(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최근 세계금융시장이 국제유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변동 폭을 키우고 있다.
원유가격이 오르면 세계주식시장이 일제히 상승하고, 떨어지면 하락한다. 세계 경제가 유가 하락을 악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저유가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과 부정의 측면이 모두 있지만 긍정적인 면이 훨씬 더 큰 것으로 믿어져 왔다. 그런데 최근 이 공식이 깨진 것이다.
석유의존도가 높은 원유수출국은 유가가 하락하면 수입이 감소하니 경제에 안 좋은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나머지 수입국경제에도 왜 부정적인 면이 더 커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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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긍정의 효과사실 원유가격이 하락하면 원유수입국은 여러 측면에서 경제적으로 이점이 많다.
원유 수입국의 입장에서 원유의 수입가격이 낮아지면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장점이 있다. 또 물가하락 효과가 있어 실질구매력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즉 돈이 가치가 올라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실제 미국, 일본 EU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2015년 원유수입량은 전년과 비슷했지만 원유 수입액은 2014년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그 결과 유로지역은 지난해 1~3분기 경상수지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0억 유로 가까이 증가하는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경상수지가 개선됐다. 다만 미국은 강달러의 영향으로 경상수지가 오히려 소폭 악화됐다.
가계의 에너지 관련 소비지출이 감소하면서 다른 제품을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확대돼 실질구매력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한국은행이 가솔린 소비 비중을 토대로 유가하락으로 다른 제품을 소비할 여력을 계산한 결과 영국은 전체 소비의 2%, 독일, 미국, 일본은 각각 1.6%, 1.1%, 0.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가 증가하면 공급을 따라 늘리기 위해 투자가 증가하는 선순환이 이어져 경기가 좋아진다.
◇ 부정적인 효과물가가 낮아져 소비여력이 커지는 건 좋지만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물가하락은 자칫 디플레이션에 빠질 위험이 있다. 디플레이션은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으로 경기침체기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디플레이션 상태가 되면 소비자들은 경기가 나빠지는데서 오는 두려움으로 씀씀이를 줄이는데다 가격 하락에 대한 기대감까지 겹쳐 소비는 더욱 위축된다. 소비 감소가 다시 생산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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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유가로 디플레 우려 증폭현재 세계 경제가 부진한 상황에서 원유가격이 급락하자 상당수 국가들이 디플레 우려에 직면해 있다.
국제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한 지난 2014년7월 이후 미국, 유로지역, 일본 등 주요 원유수입국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하락했다. 한은에 따르면 유가하락이 소비자물가에 미친 영향은 미국이 –0.8~-1.3%포인트, 유로지역 –0.5%~-0.9%포인트, 일본 –0.1%~-0.9%포인트에 이른다.
특히 유로지역과 일본의 경우 물가상승률이 일시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0%에 근접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자재가격의 비중이 크게 반영되는 생산자물가의 경우 유로지역은 2013년, 미국과 일본은 2015년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경기부진과 높은 불확실성으로 인해 국민들은 소비를 줄이고, 기업들도 설비투자를 꺼리고 있다. 이는 유가하락으로 증가한 구매력이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경제 주체들에게 경기가 더 나빠질 것이란 심리를 심어주며 경기를 위축시키는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경기둔화 우려는 이 같은 부정적인 영향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유가 하락은 그 자체로 세계경제가 활력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세계 원유의 12%를 소비하는 중국의 경기둔화는 원유 소비를 더욱 감소시켜 유가를 하락시키고, 이는 다시 주요 국가들의 물가 하락을 초래해 전 세계를 디풀레 공포에 빠트릴 수 있는 것이다.
원유 수출국의 경기위축도 세계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와 주요 석유수출기구(OPEC) 회원국들의 경우 수출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상회하는 등 국가 경제에서 원유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따라서 원유가격 하락은 곧 수입 감소로 이어져 실물경기가 둔화되고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의 경우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들 산유국은 국제 유가하락으로 지난해 수출 손실 규모가 GDP(국내총생산)의 7~27%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우디의 손실액은 1천337억 달러, 이라크 395억 달러, 베네수엘라 365억 달러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일부 산유국들은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산유국 경제의 부진은 세계시장의 수요 감소로 이어져 다시 세계 경제를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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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시장에도 악영향문제는 이 같은 실물경제부문의 영향이 자본유출과 외환보유액 감소 등 금융부분으로 전이돼 금융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산유국들은 한 국가의 신용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프리미엄이 유가 폭락 이후 크게 높아졌다. 사우디의 경우 2013년 말 55에 불과했지만 2014년 66.7로 높아졌고, 지난해는 155.8로 치솟았고, 베네수엘라는 2013년말 1천150.2에서 지난해 4천867.9로 상승했다.
{RELNEWS:right}원유수출국의 외환보유액도 빠르게 줄고 있다. 러시아의 지난해 외환보유액은 전년 대비 30.7%, 베네수엘라 24.3%, 사우디는 8.8%나 감소했다.
특히 이들 국가는 과거 원유수출로 남긴 돈으로 해외에 투자를 많이 한 대외순자산국들이다. 저유가로 국가 재정이 악화되면 대외투자자금을 회수할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주식시장에서 중동 자금이 많이 빠져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금융시장이 원유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은행 조사국 국제종합팀 이재원 과장은 “재정압박을 받고 있는 일부 산유국을 중심으로 금융불안이 확대되고 여타 신흥국으로 전이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