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이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사드) 배치 논의가 동북아 신냉전 질서를 격발시키고 있다.
대북 제재의 수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온도차가 뚜렷해지자 신중론이 우세했던 사드 배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급기야 한미 양국 정부가 공식 논의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사드와 관련해 그동안 유지됐던 3무(無) 즉 ‘미국측 제안도, 양국간 논의도, 결정된 것도 없다’는 원칙을 깨고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드 배치 문제를 공식 언급한데 이어 9일엔 박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와 잇따라 전화통화를 갖는 등 대북 제재와 관련한 공조를 과시했다.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한미 공동실무단도 이달 안에 가동돼 한국내 배치 후보지와 조성 비용 등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사드 배치가 과연 적절하며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 조치일까?
북한은 새해 벽두인 지난 달 6일 초기단계의 수소폭탄 실험을 강행하더니 음력 설 연휴엔 위성을 명분으로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밀어부쳤다. 남북한 간에 핵과 미사일 전력의 비대칭 구조가 심화되는 사정을 감안하면 다층의 방어망을 구축하기 위한 사드 배치 논의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더구나 중국이 북한 김정은 정권을 움직이지 못할 뿐 아니라, 겉으로는 핵과 미사일 실험에 반대하면서도 강력한 대북제재에는 한발 빼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한미 양국을 자극해 강경론이 득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드 배치는 동북아 신냉전 질서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국익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벌써부터 ‘한미일’ vs ‘북중러’의 대립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 내 사드배치 논의에 대해 중국은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를 불러 강력 항의했고, 중국 관영매체들은 “사드가 배치되면 한국은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박노벽 주러 한국대사를 불러 경고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했다고 한다.
사드 레이더의 광범위한 탐지거리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 주변국의 위기의식을 부추길 것이고,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를 허용하면 한중, 한러 간 외교 관계는 악화될 것이 뻔하다. 역대 최상이라던 한중관계가 타격을 입을 경우 불똥은 경제로 튈 수 있다. 우리는 지난해 469억 달러의 대중국 무역흑자를 기록할 정도로 중국은 이미 제1의 교역상대국이 됐다.
사드 배치를 계기로 동북아 질서가 한중일, 북중러로 블록화된다면 북한을 압박하고 고립시켜 핵을 포기시키려는 우리의 계획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다.
오히려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는 중국의 인내심을 점점 한계치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고, 기존의 우호적인 한중관계를 바탕으로 북한을 더욱 고립시킬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치 기다린 듯한 사드 배치 공론화는 우호적인 우방이 우리에게 등을 돌리게 하는 전략적 실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