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설비 정비 전문 공기업인 한전KPS가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해 도를 넘은 '차별적인 처우'를 한 사실이 드러나 비난을 사고 있다. 기술력과 현장경험은 기간제 노동자들이 정규직보다 뛰어났지만, 한전KPS는 노골적으로 이들을 차별했다. CBS 노컷뉴스는 법원 판결문과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한전KPS 인천국제공항지점 소속 기간제 노동자들의 아픔을 1인칭 시점의 기사로 재구성했다. [편집자 주]
나는 지난 2008년 10월 1일부터 2013년 9월 30일까지 한전KPS 인천공항지점에서 일했던 기간제 노동자다. 나이는 39살. 아내와 9살짜리 딸이 하나 있다.
나는 2004년부터 인천공항에서 전력설비 점검 업무를 맡아 일하고 있다. 전기기사 1급과 전기공사기사 1급, 소방기사 1급 외에도 전기 관련 기사 자격증을 5개나 가지고 있는 중급기술사(3급)이다.
나와 같은 기간제 노동자는 모두 140명에 달했다. 반면 한전KPS 소속 직원은 지점장과 팀장, 과장 등 주로 관리자급으로 단 13명에 불과했다. 그들은 모두 정규직이다.
인천국제공항 야경 (사진=자료사진)
◇ "갓 입대한 이등병이 장교 노릇을 한다"하지만 우리 같은 기간제 노동자들이 오히려 정규직보다 기술력이 뛰어났고 인천공항 전력설비에 대한 현장 경험도 풍부했다. 인천공항 개항 초기부터 이곳에서 일하며 잔뼈가 굵었기 때문이다.
2008년 10월. 한전KPS가 5년 동안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전력계통시설 유지관리용역계약'을 체결하고 본사 정규직들을 이곳에 처음 발령 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들은 인천공항 전력시스템과 전력설비 점검 위치 등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이해조차 부족했다. 한마디로 우리가 안내를 해주지 않으면 화장실조차 혼자 찾아갈 수 없었다.
당연히 '항공 등화시설 및 전력시설 등의 관리 및 운영규정'에 따른 정규직 교육훈련도 우리가 담당했다.
비정규직인 내가 전력상황실에 근무할 때 필요한 인천공항의 전력계통시설 구성과 비상시 대처법 등을 하나하나 가르쳤다.
인천공항 전력시스템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KPS 정규직 직원들이 관리자로 부임하니 업무 효율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인천공항공사 측도 답답했는지 회의 때 기간제 노동자들의 동석을 요구하는 일이 잦았다.
기간제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갓 입대한 이등병이 장교 노릇을 한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정규직과 기간제 노동자들 사이의 순환근무가 일상화될 정도로 담당 업무의 내용에도 본질적인 차이가 없었다. 핵심 중간간부인 과장급은 전체 12명 가운데 80%가 넘는 10명이 기간제 노동자로 채워졌다.
◇ 인천공항 지키는 핵심 업무…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인천공항의 운영에서 전력시설은 사람의 신체로 따지면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력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종합정보센터(AICC)와 관제탑, 레이더 등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항공기 이착륙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인천공항의 핵심 업무인 전력계통시설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은 '기간제 노동자들'이 없다면 애초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전KPS의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처우는 도를 넘었다. '공기업이니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먼저 한전KPS는 본사 정규직에 지급하는 연 4회의 경영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았다.
또 월 최대 20만 원인 기술수당과 월 10만 원 전후인 근무환경수당, 일 5만5,000원인 교대근무수당, 월 2만 원인 여성직원수당 등도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한전KPS 조직도 (그래프=스마트뉴스팀 제작)
복지포인트 지급과 명절 선물에서도 차별이 심했다.
이 때문에 기능사 7년 이상이나 산업기사 4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고급기능사(4급)의 경우 본사 정규직 연봉은 최대 6,500만 원에 달했다.
하지만 기간제 노동자(4급) 급여는 월 최대 265만 원으로 연봉으로 환산하면 3,180만원. 정규직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3급인 내 경우도 월 수령액이 250만 원으로 연봉 3,000만 원에 그쳤다. 여기에다 교통비와 식비를 제외하면 집에는 월 200만 원을 가져가기도 힘들다. 아내가 맞벌이하지 않으면 도저히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다.
전체 직원 수의 10%에도 못 미치는 한전KPS 정규직들이 인천공항공사에서 인건비로 내려 보낸 기성금(중간정산금)의 30% 이상을 가져가니 기간제 노동자들의 몫이 많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인천공항의 전력시스템을 책임지는 핵심 업무를 맡고 있다'는 자부심도 점차 무너져 갔다.
◇ 법원도 1, 2심에서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시정하라"
한 기간제 노동자가 인천공항의 전력 설비를 점검하는 모습 (사진=자료사진)
결국 우리는 지난 2013년 10월과 12월에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이어 중앙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신청'을 했다.
하지만 모두 기각당했다. '정규직과 기간제 노동자를 비교대상자로 볼 수 없다'며 그들은 사용자의 입장에 섰다.
우리는 이듬해 다시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의 판단은 노동위원회와 달랐다.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8조(차별적 처우의 금지)를 위반했다"며 우리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전고법 제1행정부(재판장 이승훈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3일 '중앙노동위 차별시정 재심판정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경영성과급과 각종 수당 지급에서 차별적 처우가 존재한다"고 인정했다.{RELNEWS:right}
이에 대해 중앙노동위는 대전고법의 판결을 받아들였지만, 한전KPS는 대법원에 상고를 한 상태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8조(차별적 처우의 금지)는 "사용자는 기간제 근로자라는 이유로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범을 보여야 할 공기업마저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이 땅의 수많은 계약직은 누구를 의지할 수 있을까? 설을 쇠고 또다시 노동 현장으로 돌아온 지금 우리는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