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 상담은 6층으로 오세요."
건물 8층에서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는 A(47)씨는 1층 안내표지판 앞에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표지판 8층 자리에 있어야 할 자신의 산후조리원 간판이 사라지고 대신 '다른 층으로 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1층 표지판뿐 아니라 지하 1∼3층과 엘리베이터 내부 표지판도 마찬가지로 바뀌었다. 게다가 건물 외벽엔 'OOO 산후조리원 개원'이란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OOO 산후조리원'은 A씨 산후조리원과 같은 이름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당황한 A씨를 6층에서 맞은 사람은 A씨에게 약 1년 전 산후조리원을 넘긴 전 주인(48)이었다. 같은 건물 다른 층을 새로 빌려 똑같은 이름의 산후조리원을 차린 것이다.
전 주인이 이런 행동을 한 건 A씨와의 계약 분쟁 때문이었다. 같은 교회를 다니며 친분을 쌓은 전 주인에게 A씨는 수 억원을 내줬다. A씨는 이를 산후조리원 매매계약이라 여겼지만, 전 주인은 산후조리원을 담보로 한 대출이라 주장했다.
양측은 민사소송을 벌였고 법원은 '전 주인이 A씨에게 산후조리원을 판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전 주인은 계약을 파기하겠다며 산후조리원을 점거하고 A씨 출입을 막았다. 법원이 퇴거명령을 내리자 아예 건물 다른 층에 같은 이름의 산후조리원을 차리고 고객을 가로채려 한 것이다.
전 주인은 심지어 8층 A씨 산후조리원이 쓰던 전화번호를 몰래 명의변경 해 자신의 6층 상담실로 옮겨놓기까지 했다. 산모가 A씨 산후조리원에 가려 해도 자연스레 전 주인의 산후조리원으로 발걸음 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A씨는 전 주인을 업무방해와 건조물 침입죄로 고소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0부(신광렬 수석부장판사)는 전 주인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로 A씨가 입은 피해가 적지 않음에도 피고인은 현재까지 범행을 부인하며 피해 회복을 위한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