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이른바 '3대 명품'을 유치하기 위한 면세점들의 행보는 눈물겨울 정도이다. 이미 서울 시내 면세점끼리 명품 유치에 경쟁이 불붙은 상황에서 정부에서 조만간 추가 허가를 내줄 가능성이 커져 명품들의 콧대만 갈수록 높아져가고 있다. 구두 계약을 하고는 돌연 잠적하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는 등 명품들의 '갑질'이 비일비재한데도 면세점 업계는 일단 유치하고 보자는 전략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 인테리어 비용 전액 부담 '모셔가기 경쟁'…구두계약 해놓고 잠적
비싼 가격에 걸맞게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명품 매장. 그만큼 엄청난 인테리어 비용이 들고, 공사 기간만 6개월~1년이 걸린다. 불과 몇해 전만 해도 면세점 매장 인테리어비용의 절반 정도는 명품 회사들이 직접 부담했지만 지난해부터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신규 면세점들이 명품 유치에 열을 올려 서로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면세점이 100% 인테리어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여기에 유치를 위한 웃돈을 제시하는 것도 암암리한 관행이다.
한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50대 50 정도가 원칙이었다. 인테리어 비용이 워낙 고가이기 때문에 서로 협의를 해서 공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워낙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인테리어 비용을 떠앉는 것은 당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미 명품이 입점해 있던 기존 면세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명품 회사들이 아시아에 매장수를 더이상 늘리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면서 매장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명품 유치 경쟁에 일부 관계자들은 '상도덕'을 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일부 MD 관계자들끼리 특정 면세점을 헐뜯고,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 면세점끼리 상도덕을 넘어설 정도로 살벌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 회장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에도 신규 면세점 사업자들이 면담을 위해 줄을 섰지만 거의 대부분 만남이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 오너들이 직접 면담을 위해 나섰음에도 아르노 회장은 몇몇 백화점 관계자들만 만나고 떠났다고 전해진다.
◇ 명품 몸값만 높이는 소모전 "다른 마케팅 전략 고민해야"
면세점 (사진=자료사진)
면세점들이 3대 명품 입점에 이처럼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매출보다 '브랜드 파워'를 과시하기 위한 측면이 큰 것으로 보인다.
에르매스, 샤넬, 루이비통은 평균적으로 면세점 매출의 10% 안팎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매출 규모로만 봤을때에는 큰 비중은 아니다. 하지만 명품이 입점해있다는 것이 면세점의 위상을 높여주는 효과를 낸다고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관광객들은 명품을 사지 않아도 명품 매장이 있는 곳에서 쇼핑을 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 명품 매장이 면세점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밖에 3대 명품이 입점하면, 다른 명품 브랜드들도 자연히 따라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명품 입점이 재벌가의 '자존심 대결'로 비쳐지면서 경쟁이 더욱 과열된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서 3대 명품이 없이 오픈을 하면 '반쪽 개장'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경쟁 프레임을 만든 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과도한 명품 유치 경쟁은 결국 명품의 몸값만 높이는 소모전일 수밖에 없다. 주요 명품회사들은 국내 매장수를 크게 늘리지 않고 유지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우고 있어, 매장을 뺏어와야 하는 싸움인 것이다. 가뜩이나 투자 비용에 비해 매출이 부진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신규 면세점들은 과도한 명품 유치에 올인했다 되려 손해가 커질 수 있다.
명품 유치에만 매달리기보다는 외국인 관광객의 수요를 분석해 다양한 맞춤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면서 차별화를 두는 것이 더 낫다는 조언도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재 요우커들은 명품보다는 국내 브랜드를 선호하고, 객단가가 줄어드는 등 소비 패턴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명품 유치에 모든 기대를 거는 것보다 마케팅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