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식 국가보훈처 홍보팀장이 16일 서울 용산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36주년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으로 결정한 것에 대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국가보훈처가 16일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또다시 거부했다. 보훈처의 일관된 입장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노래'라는 박승춘 보훈처장의 지론에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아무리 '실세 차관'이라도 대통령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여기에 동의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3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 회동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애당초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야당 원내대표들을 만나 "국론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답했을 뿐, 기념곡 지정이나 제창을 약속한 바 없다. 이는 박 처장에게 '국론분열이 우려돼 현행 유지말고 답이 없다'는 편리한 결론을 낼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일 수 있다.
이 와중에 "언론보도 이외에 청와대로부터 직접적 지시를 받은 게 없다"는 보훈처 측 설명까지 등장하면서, 청와대가 이 문제를 방치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져 있다. 보훈처의 말이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은 아무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야당에 단순한 립서비스만 한 게 된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번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에 덧붙일 게 없다"고 선을 긋는 등 청와대는 관련 사항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처장에 대한 청와대의 신임이 꽤 크다고 알고 있다. 국회 상임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박 처장이 말썽을 빚었지만, 꾸준히 직을 유지하고 있다"라며 "박 처장이 혼자 이번 결정을 내렸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사진=국가보훈처 홈페이지 캡쳐)
실제로 박 처장은 '87년 헌정 체제' 수립 이후 최장수 보훈처장으로 재직 중에 있는 등 박 대통령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87년 체제 이후 12대 전석홍 처장부터 28대 박 처장까지 모두 17명의 보훈처장이 배출됐는데, 유독 박 처장만 장기 집권하고 있다. 2011년 2월24일 취임한 박 처장은 지금까지 5년 4개월째 직을 꿰차고 있다. 전임자들은 2개월(18대 오정소 처장)에서 3년(27대 김양 처장) 임기에 그쳤다.
뿐만 아니라 박 처장은 유일하게 '정권 교체 뒤'에도 유임된 보훈처장이다. 박 처장은 이명박정권 때 임명됐다. 그의 전임자들이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개각 때 어김없이 교체당했던 것과 대조된다.
박 처장의 승승장구는 그가 '친박계'이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박 처장은 2007년 6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경선 후보의 캠프에 투신한 바 있다. 그때부터 안보 분야 조언을 하면서 박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로 있던 2005년 12월 이미 당 국제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바 있다.
최고 권력자와의 '관계'를 감안해서인지 박 처장은 그동안 국회를 상대로도 '뻣뻣한 자세'로 일관해왔다. 이에 대한 질타는 야당 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숱하게 나왔다.
2014년 11월 박 처장은 국회 정무위원장실을 찾아가 '장진호 전투 기념비 건립 사업비' 예산 3억원 삭감에 항의하면서 탁자를 내리치고 고함을 치는 등 사상 유례없는 소란을 벌였다. 정무위원장은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이다. 박 처장은 나중에 "흥분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사과했다.
2013년 국정감사 과정에서도 야당 의원의 자료제출 요구에 "자료제출을 요청하는 목적이 뭔지"를 되묻고 나서는 행동으로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특히 여당 소속 당시 김정훈 정무위원장은 "의원의 제출요구는 원칙적으로 수용하는 게 맞다"고 핀잔을 줬다.
이보다 4개월 전에도 야당 의원으로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관련 질의를 받다, 어이없다는 듯이 7초간 웃음을 터뜨리는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말썽을 빚은 바 있다. 박 처장은 결국 "답변 태도가 적절치 못한 데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