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수술에 이어 가명을 사용하는 의사까지 등장하면서 의료인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의료인실명제' 도입에 힘이 실리고 있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그동안 서울 강남 등의 성형외과에서는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의사가 전문의 행세를 하거나 유령수술을 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유령수술은 원래 수술을 집도하기로 했던 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나 간호사, 심지어 의료기기 업체 직원 등이 수술을 집도하는 것을 말한다.
3년 전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받던 여고생이 유령수술로 싸늘한 주검이 된 사건이 발생하며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이후에도 각종 의료사고와 의료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마, 눈, 코 성형수술을 받던 50대 여성이 사망한 사건을 비롯해 유령수술로 부작용을 호소하는 중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외국인 의료관광 유치까지 비상에 걸리기도 했다.
이번에 불거진 의료진의 가명 사용은 해당 의사의 전문의 자격 취득 여부 등 정보 확인을 어렵게 만들어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박영진 기획이사는 "환자들은 인터넷상에 공개된 의사 정보를 보고 병원을 고른다"며 "의료진이 가명을 사용하게 되면 제공된 전문의 진료과목 등의 이력이 맞는지 사실 확인도 어렵고, 어떤 학회나 의사회에 속해 활동하는지와 같은 추가 정보를 얻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런 의료진의 거짓 이력 포장과 유령수술은 '성형외과 전문의'라는 타이틀과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스타 의사'로 환자를 유인하기 위해 발생한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의료계 내부에서는 의료인실명제를 통해 유령수술 등을 근절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의사협회는 이달 내로 수술 내용과 위험 등에 대한 설명만 담겨있는 기존의 수술동의서 양식에 수술 집도의, 수술 보조자가 누구인지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김주현 의사협회 대변인은 "그동안은 유령수술이 벌어져도 실제 집도의가 누구인지 추적하기조차 힘들었다"며 "유령수술 근절은 물론 환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수술동의서에 의료인실명제를 도입하는 것과 더불어 성형외과 등 의료기관들이 환자나 보호자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에 거짓 정보를 게재할 수 없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성형외과의사회는 이보다 나아가 의료인이 전문의를 표방할 경우 전문과목을 명시하는 등의 강력한 의료인실명제를 촉구하고 있다.
박영진 기획이사는 "수술은 하지도 않는 스타 의사를 병원 홈페이지에 내세워 광고하거나 타과 전문의를 성형외과 전문의인 것처럼 교묘하게 속이는 것은 사기"라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진료실, 수술실뿐만 아니라 병원 광고, 홈페이지 등에서도 의료인의 정보를 전공과목까지 공개하는 강력한 의료인실명제 없이는 근절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