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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진정으로 '네'라고 말한다는 것은"

    신간 '존재와 세계를 긍정한 철학자_리쾨르 편'

     

    신간 '존재와 세계를 긍정한 철학자_리쾨르 편'은 리쾨르의 철학을 올빼미와 리쾨르의 대화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책을 펼치면 한 면은 텍스트, 다른 한면은 정겨운 삽화를 실어 독자의 감성을 일깨운다. 잛은 분량의 책이지만, 폭넓은 리쾨르 철학 사상의 핵심을 간결하고 서정적으로 짚고 있다.

    "당신은 동시에 모든 것을 긍정하고자 원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거야.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거야?"

    "오래된 질문이로군! 바로 의지에 관한 내 첫 저서에서 다룬 질문이야. 그 책에서 나는 우리가 자기 몸과 감정의 주인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지. 그리고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선택하지도, 결정하지도 않은 것들에 '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26쪽

    "그래 , 언제라도 암흑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 그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앞을 분간할 수 있도록 우리 눈을 훈련해야 하는 거야."
    -32쪽

    "인간은 자유와 나약함이라는 이중의 얼굴을 가진 존재야. 둘 중 한쪽만을 보아서는 안돼."
    -35쪽

    "이번엔 저쪽을 봐. 오로지 선한 것만을 보는 이들이 사는 세계야. 참으로 믿음이 넘치는 표정들을 하고 있군! 저 앞쪽에는 판관들의 세계가 있어. 악에 반대하기 위해 오로지 악만을 보는 자들이지! 그리고 이쪽은 실용적인 지혜의 세계야. 이곳 사람들은 타인들의 관점에 비추어 자신의 관점을 상대화함으로써 분쟁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지!"
    -42쪽

    "이곳에 살기 위해서는 외따로 떨어져서 자신을 대면하고, 진실로 자기 자신이 될 용기가 필요한 법이지."

    "하지만 그렇게 고립되어, 찡그린 얼굴로 양보를 거부하는 모습은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바위를 연상시키는군. 그런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경멸로 가득한, 쓸쓸한 유배지가 되어 버릴지도 몰라."
    -46쪽

    "당신이 말했듯이, 혼자서도 충분히 선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 스토아주의자들이 한계지. 그들은 진정으로 '네'라고 말할 줄 몰라. 현실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거든."
    -48쪽

    "이곳은 오르페우스의 세계. 생성의 무한한 순환으로 조절되는 이 세계 속에서 삶과 죽음은 서로 하나가 되지. 몰락과 상실, 고통이 언제나 무언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 극복되는 장엄한 작품과 같은 세계지. 바닷속 물방울 하나하나가 활짝 만개한 각자의 삶처럼 반짝거리는 곳. 마치 영원한 삶의 왕국처럼!"
    -51쪽

    폴 리쾨르가 말을 잇습니다. "그래, '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려면 스토아주의적 얼어붙은 유배지와 오르페우스주의자의 감수성 넘치는 왕국 사이에 난 길을 찾아내야만 해. 하지만 과연 누가 순전히 자신만을 향한 긍정과 자신에게는 무관심한 채 외부만을 향하는 긍정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과연 씁쓸한 경멸감과 변화에 대한 도취 어느 쪽에도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이 세계에 대한 긍정을 향한 길은 불확실할뿐더러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게 될 거야."
    -54쪽

    "저 극단에 이르러 우리는 이 세계를 긍정하고,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지. 하지만 희망의 눈빛을 거두어서는 안 돼. 기다림은 계속되고 있어. 세상에는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야. 어느 것도 완결되지 않았어."
    -57쪽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1913-1980)는 철학, 정신분석, 문학비평, 종교학, 역사학, 언어학, 정치학 등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는 사상적 업적을 남겼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텍스트들 속에 담긴 삶의 의미와 진리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데 평생을 바쳤으며 다양한 층위에서의 해석들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중재할 줄 아는 대화의 철학자였다.

    폴 리쾨르는 해석학을 현상학적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인간에게 세계는 해석되어야 할 텍스트와 같다. 여기서 우리는 "믿기 위해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해하기 위해서는 믿어야 한다"는 현상학적 순환의 문제가 발생한다. 리쾨르는 이 순환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상징에 대한 믿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해석을 통해 그것을 지성적으로 입증함으로써 확신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세계에 대한 해석을 통해 자기 이해에 도달한다. 리쾨르에게 텍스트 해석은 곧 자기 이해를 위해 돌아가야 하는 먼 길과 같다. 저자와 작품 사이의 거리를 소외로 인식하는 가다머와 달리 리쾨르는 이 거리 덕분에 독자가 작품 자체를 숙고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자신을 잃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리쾨르에게 이야기는 곧 삶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단순한 자기 동일성을 넘어서는 정체성을 가진다. 이른바 ‘이야기 정체성’이다. 리쾨르는 좋은 삶은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삶이라는 소크라테스의 경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우리가 윤리적으로 좋은 삶을 살았는지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서 검토해 봄으로써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삶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삶과 만난다. 이렇게 리쾨르의 해석학은 단순한 텍스트 분석을 넘어서 윤리학적 위상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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