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전쟁이 만든 나라 미국'은 저자 강준만 교수가 지난 2014년 네이버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것이다.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로 우뚝 서게 되는 188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의 70년간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미국이 '전쟁의 산물'인 동시에 '전쟁의 축복'을 받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미국이 관여한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비단 전쟁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미국 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 70년간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분석하고 해석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오늘날의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종합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전쟁의 곤혹스러움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전쟁의 역설'은 세계 강대국들을 설명해주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에서 세계의 강대국으로 군림한 국가나 선진국치고 전쟁에 적극 뛰어들지 않은 나라가 없었으며, '전쟁의 축복'을 누리지 않은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미국은 '전쟁의 역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나라다. 미국이야말로 '전쟁의 산물'인 동시에 '전쟁의 축복'을 받은 나라의 전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독립전쟁(1776~1783), 미국-멕시코 전쟁(1844~1846), 남북전쟁(1861~1865) 등을 통해 미국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이후 벌어진 미국-스페인 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등을 통해선 '글로벌 제국'으로 성장했다. 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의 세계 무역 비율은 20퍼센트 이상으로 증가했다. 연합국, 특히 영국에 수출할 군수물자를 생산하면서 호경기를 맞은 것이다. 전쟁 전 미국은 약 30억 달러의 외채를 갖고 있었지만, 전후에는 약 130억 달러의 채권국이 되었다. 그 와중에서 뉴욕 월스트리트는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물론 미국도 수많은 전쟁을 치르느라 헤아릴 수 없는 인명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을 제외하고 모든 대부분의 주요 전쟁이 미국의 땅 밖에서 벌어져 자국 땅에서 전쟁을 겪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희생이 적었다. 그렇다고 해서 희생의 대소를 기준으로 '전쟁의 축복' 여부를 가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의 전쟁을 통해 미국이 오늘날의 글로벌 초초강대국으로 부상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몇몇 전쟁은 미국의 '명백한 운명'과 '영웅적 비전'을 위해 반드시 일어나야만 했던 '필연적인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책 속으로기술 발전엔 끝이 없었으니 성 혁명도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에 나타난 신기술을 하나만 들자면, 그건 바로 지퍼(zipper)다. 지퍼가 발명되어 편하게 구두를 신고 벗을 수 있게 된 것은 1893년이었지만, 현재 우리가 보는 형태의 지퍼로 특허를 받은 건 1917년, 현대적인 의류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지퍼가 가볍고 유연성이 있게 된 것은 1930년대였다. 앨리슨 루리(Alison Lurie)는 "지퍼보다 더 섹시한 것은 없다. 지퍼는 빠르고 열정적인 섹스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지퍼와 섹스가 무슨 관계란 말인가? 18~19세기의 정장 드레스에는 단추가 30개 달려 있었으며, 이후 단추 수가 줄긴 했지만 옷을 벗기까진 여전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뉴욕타임스』가 '세계 역사를 바꿔놓은 지난 20세기의 베스트 패션'으로 지퍼를 선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섹스는 '마지막 프런티어'인가?: 프로이트 유행과 성 혁명」(본문 225~226쪽)
1919~1920년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미국을 휩쓴 가운데 미국 정부는 두 해 동안 4,000명이 넘는 외국인들을 검거해 추방했다. 그 2년 여간 『뉴욕타임스』는 볼셰비키 혁명이 실패할 것이라는 예측을 91번이나 내놓았으며, 레닌과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1879~1940)가 도망가거나 죽거나 은퇴하거나 투옥되었다는 기사를 13번이나 내보냈다. 이렇듯 열광의 전복으로 인해 생겨난 공포가 미국 사회를 지배하면서 미국은 지구상에서 공산주의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반공국가로 우뚝 서게 된다. 1950년대 초반 또 한 번의 '빨갱이 사냥'을 거친 후 미국의 공산주의자는 CIA와 FBI의 돈으로 연명한다는 말마저 나오게 된다.「'열광'은 어떻게 '공포'로 바뀌었나?: 미첼 파머의 '빨갱이 사냥'」(본문 198~199쪽)
미국은 조선에 맏형처럼 느껴졌을망정 결코 믿을 만한 맏형은 아니었다. 아니 막내아우를 인신매매 시장에 팔아넘긴 몹쓸 형님이었다. 그러나 국제 관계에서 그런 형님-아우 관계가 어디에 있겠는가. 오직 힘이 모자란 탓이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조선 지식인들이 적자생존(適者生存)과 약육강식(弱肉强食)을 이념적 기반으로 삼은 사회진화론에 심취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포츠머스 조약으로 누구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지만, 조선의 입장에선 그 사람에게 '악마의 저주상'을 줘도 시원치 않을 일이었으리라. 「"포츠머스 회담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평화 회담"이었나?: 포츠머스 조약」(본문 135~136쪽)
1940년대 후반에 가면 '미국의 세기'라는 게 점점 더 분명해진다. 예컨대, 미국은 1946년 연간 350만 대 자동차를 팔아치우고, 1949년 최초로 500만 대를 넘어서는 자동차 생산량을 기록한다. 이 지구상의 어떤 나라가 감히 미국의 이런 풍요에 대적할 수 있단 말인가.……무기 대여법에서부터 시작된 '미국의 세기'라는 표현은 수많은 사람에 의해 상시적으로 인용되면서 덕분에 루스의 명성까지 불멸의 왕관을 쓰게 된다. 그게 부러웠던 건지는 몰라도 훗날 모리스 버먼(Morris Berman)은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다고 한다면 21세기는 '미국화된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미국화된 세기'의 한복판에 살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지속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무엇이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만들었나?: 미국의 무기 대여법」(본문 311~3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