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최근 잇따른 강력범죄로 치안 불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주요 사건 때마다 여론의 눈치를 보며 면피에만 주력하는 등 치안 불안이라는 근본문제 해결은 커녕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 뚫린 치안에도 여론 환기만 급급경찰은 일반 시민 대상 '묻지마 범죄'에 대한 치안 부재 해결보다는 말 바꾸기로 여론의 비난 화살만 피하고 있다.
수락산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범인인 김학봉(61) 씨가 자수한 지난달 29일 경찰은 '묻지마 범죄' 가능성을 내비치더니 다음달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선 김 씨의 진술이 엇갈린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후 경찰은 김 씨의 강도 전과를 이유로 해당 사건을 강도살인으로 범죄를 특정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김 씨가 조현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강남 화장실 사건처럼 조현병 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일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사회적 쟁점이 되는 사건마다 경찰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불신을 자초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강남역 살인 피의자 김 모 씨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지난달 17일 발생한 서울 강남 20대 여성 살인사건 때도 경찰은 피의자 김 모(34) 씨를 검거한 후 "여자들이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여성 혐오 논란으로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경찰은 최종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여성혐오 등은 살인과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다"는 취지로 말을 바꿔 빈축을 샀다.
이에 앞서 강신명 경찰청장도 기자단과 간담회 자리에서 사견을 전제로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고 밝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지난 1일 새벽 귀가하다 낯선 남성의 공격을 받은 피해 여성은 해당 사건을 두고 경찰과 '묻지마 범죄'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은 1일 오후 사건 중간 수사 발표에서 이씨가 둔기를 여러 차례 휘둘렀지만 강도가 약해 살인의 고의성이 없어보이는 등 전형적인 '묻지마 범행'과는 다르다고 결론내렸다.
이에 피해 여성 측은 "죽어야만 '묻지마 사건'이냐"고 항변했다.
◇ 살인범 신상 공개도 여론 눈치
수락산 등산로에서 6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피의자가 김학봉(61)이 3일 오전 서울 수락산 범행장소에서 현장검증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살인범 신상 공개도 논란거리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수사한 서초경찰서는 미공개, 수락산 살인 사건을 수사한 노원경찰서는 공개 결정을 내놨다.
경찰 내에서도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 기준이 제 멋대로인 셈이다.
일선 경찰서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8조 2항에 따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피의자 신상 공개를 결정한다.
해당 법에 따르면 수사 기관이 범행 잔인성·충분한 증거·신상 공개의 공익성 등을 판단해 피의자의 신상정보 공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경찰서마다 꾸려지는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의 공개 기준이 모호하고 위원회 구성·운영이 전적으로 해당 서에 맡겨져 있다보니 결론도 제각각이다.
실제 강남역 사건을 수사한 서초경찰서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범행인 데다 범죄 예방이나 재발 방지 효과가 크지 않다"면서 피의자 신상 미공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반면 수락산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노원경찰서는 "정신질환자라는 것보다 재범 우려와 범죄 예방 효과가 크다"면서 김 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각 사건마다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이렇게 오락가락한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경찰의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기준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찰청 관계자도 "각 수사기관에서 위원회를 꾸려서 공개 여부를 결정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기준이 다른 경우가 나온다"면서 "강력범 신상 공개 기준 통일안을 조만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