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당시 모습.
대통령 직선제 물꼬를 튼 6·29선언이 발표된 지 29일로 29년.
한국 민주화의 중대 분수령이 됐던 무렵, 전두환 전 대통령이 시민항쟁 대응 방안을 모색하다 군대 투입을 검토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날 국민일보는 미국 정부에서 기밀 해제된 '시거 차관보와 전두환 대통령의 회동'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문건에 따르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개스틴 시거 미 국무부 차관보를 만나 군부 동원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6·29선언이 있기 닷새 전인 1987년 6월 24일의 일이다.
◇ 전두환 "무력 동원할 것…미국은 폭도 편에 서면 안돼"전 전 대통령은 "무정부 상태가 벌어진다면 누구에게도 득될 것이 없다"면서 "정부는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 무력(NECESSARY POWER)을 동원해 개입해야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내전에 이르는 최악의 상황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그 경우 미국 정부는 나라를 파괴하려는 폭도들의 편에 서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87년 항쟁에 군 투입을 검토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당시 경찰총수이던 권복경 전 치안본부장은 2013년 5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각하는 1987년 6월 시위대가 부산 거리를 가득 메우자 군을 투입해 진압하라고 명령했다"고 회고했다.
그에 따르면 사태는 이미 6월 14일부터 심각해졌는데, 이날 오전 전 전 대통령은 그에게 "학생들이 시위하고 있는 명동성당에 경찰력을 투입해서 진압하라"고 지시했다.
(사진=대통령 기록관)
진입시 성당 훼손이 불가피해 전선이 확장되는 것을 우려한 권복경 치안본부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대통령 형 전기환씨에게 부탁해 가까스로 명령 취소를 이끌어냈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시위대는 더욱 늘어갔고 19일 오전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군대 투입 작전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87항쟁 관련자의 인터뷰 내용을 한겨레가 재구성한 2007년 6월 12자 기사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군 고위 관계자들을 불러 "대전과 대구에 1개 사단을 내려보내고, 2개 여단은 전남·광주로 돌려. 부산은 1개 사단과 1개 연대를 보내서 1차로 부산과 대구, 마산의 시위 사태를 진입해야 겠어"라고 말했다.
또 "서울은 4개 연대를 배치해서 주요 대학에 배치하도로 해. 내일 새벽 4시까지 전부 진입하도록 해야 돼요"라고 덧붙였다.
◇ 19일, 오전 軍투입 결정후 美메시지 받고 오후 철회이러한 대목은 권복경 전 치안본부장의 동아일보 인터뷰에서도 나타나는데, 그는 "6월 19일 안기부 궁정동 안가에서 회의가 있다기에 갔더니 이미 회의 전에 부산에 군을 투입하기로 결정이 내려진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광주가 유혈 진압된 지 7년만에 다시 군의 총부리를 시민들에게 돌리겠다는 지시였다.
이때 긴박한 상황을 읽은 미국이 나섰다.
당시 한국과 미국 정부의 가교이던 제임스 릴리 전 주한미국대사는 2004년 펴낸 자신의 회고록 '중국통(China Hands)'에서, 군대 투입 계획이 알려지자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친필 서한을 보내 이를 반대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19일 오후 2시쯤 전 전 대통령에게 직접 친서를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릴리 전 대사는 "다시 군이 시위대를 진압할 경우 제2의 광주가 될 것이고 한국은 내전상태로 빠져들었을 것"이라고 돌이켰다.
결국 2시간 30분 뒤 군의 출동 지시는 보류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