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주식 특혜 매입 혐의로 현직인 진경준 검사장이 구속되고, 검사 출신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부동산 매매 관련 의혹들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도입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진 검사장 구속과 함께 일제히 공수처 도입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야당 내부에서도 당 지도부가 얼마만큼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19일 우 원내대표와 박 비대위원장이 만나 공수처 신설에 적극 공조하기로 합의하는 것을 계기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더민주의 '민주주의 회복'TF는 21일 공수처 신설 법안 내용을 발표하기로 했고, 국민의당도 빠른 시일 내에 대체적인 법안 골격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박범계 의원은 "내일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각각 법안 요지를 발표하고 이를 상호 대조해서 더민주와 국민의당, 정의당 3당 공동발의를 일주일 내에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20일 밝혔다.
일사천리로 법안 도입이 진행되면서 법안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수처 신설 법안은 1996년부터 등장했었던 만큼 이미 충분한 전례들을 축적하고 있다.
더민주는 지난 19대 국회에서 김동철 의원(現 국민의당)이 대표 발의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과 양승조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그리고 참여연대가 청원 발의한 법안 등을 뼈대로 법안을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발의된 법안 들을 살펴보면 대체적인 법안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 발의된 김동철 의원의 법안은 ‘수사처는 고위공직자나 그 친족의 범죄 및 관련범죄에 대한 수사 및 공소 제기와 유지의 직무를 수행한다’고 규정했다.
수사처에는 처장(1인), 차장(1인), 특별수사관(100인), 수사관과 그 밖의 직원을 두도록 했으며 처장은 15년 이상 변호사 자격이 있는 자로서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치도록 했다.
처장 추천위원회는 9인으로 구성하되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중 6인은 국회의장이 추천한 자를 임명하도록 해서 국회의장의 권한을 강화시켰다.
또 특별수사관은 검사 경력이 없거나 검사를 그만둔 지 3년이 경과한 자로 제한해 검찰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공수처 법안의 가장 민감한 부분은 바로 수사대상의 범위다.
참고할 만한 사례로는 지난 2012년 이재오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의원 13명이 공동 발의한 이 법안은 수사대상을 국회의원과 차관급 이상 공무원, 지방자치단체장, 법관 및 검사, 장관급 장교, 사정기관의 국장급 이상 공무원으로 지정하고 있으며,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가족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같은 법안이 통과될 경우 검찰이 가지고 있던 ‘독점적 기소권한’이 유명무실화되면서 검찰의 권한과 위상이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게 된다.
수사 대상은 일단 최대한 범위를 넓게 하되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특별수사관에서 검사 출신을 제외하는 방안은 재고한다는 것이 더민주의 방침이다.
더민주 박범계 의원은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현직 검사나 검사 출신들을 배제하는 것은 적절한지 다시 생각해 봐야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야3당은 다음 주 중으로 구체적인 야당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이지만 이번에도 검찰과 여당의 강력한 반발은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전망이다.
민경욱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20일 브리핑을 통해 "정치권 입맛에 따라 국가수사시스템을 2년 만에 또 바꿀 수는 없다"며 "새누리당은 공수처 설치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쉽지는 않겠지만 20대 국회에서는 이전과 달리 예상외의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나온다.
한 야권의 중진 의원은 “진경준, 우병우 의혹으로 검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됐고, 여소야대 정국에 새누리당 내 비박계도 공수처 도입에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거처럼 공전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