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격대표선수 진종오(왼쪽)가 10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데오도루 올림픽 사격장에서 열린 남자 50m 권총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북한의 김성국과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11일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사격 남자 50m 권총 결선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의 진종오(37)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북한의 김성국(31)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오늘 3등을 했는데 참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1등이 남조선, 2등이 베트남, 3등이 우리인데 우리 하나가 돼서 메달을 따면, 앞으로 통일이 되면 1등과 3등이 조선의 것으로 하나의 조선에서 더 큰 메달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북한 선수가 올림픽 기간에 통일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현장에 있던 국내 취재진도 깜짝 놀랐다더군요.
그런데 이 발언에 대한 국내 누리꾼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총질에서 대한민국에 체면 구기고 가니 숙청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김성국은 분명 적화통일을 말하는 건데 개념도 없이 뭔 감동이라고 난리들인지" 등등.
이에 앞서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기계체조 선수인 한국의 이은주(17)와 북한의 홍은정(27)이 연습 도중 함께 셀카를 찍고 있는 모습이 외신에 보도되면서 전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해당 셀카를 본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위대한 몸짓"(Great gesture)이라고 표현하면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이에 대한 국내 누리꾼들의 반응은 다소 달랐습니다. "훈훈하긴 한데, 저 선수 올림픽 끝나고 북한 돌아가서 탄광 끌려가는 거 아닌가 걱정"이라는 겁니다. 언론도 앞다퉈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바빴죠.
이러한 반응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도 적잖습니다. "아직도 지구상의 마지막 남은 불쌍한 분단국가 코리아는 50년대 사고로 꽁꽁 얼어 있다"라는 어느 누리꾼의 지적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문득 '우리는 왜 지구촌 축제라는 올림픽에서 남과 북의 선수들이 만난 것을 두고 처벌 걱정부터 하게 됐나'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이와 함께 한국전쟁과 그 이후 남북 분단 상황을 다룬 여러 편의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이들 영화와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네 인식 사이에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을까'라는 쪽으로 생각을 옮겨봤습니다.
관련 영화를 찾고자 인터넷을 뒤져보니 예상대로 편수가 몹시 많더군요. 그래서 2000년대 개봉한, 5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상업영화로 범위를 좁혔습니다. 대략 '공동경비구역 JSA'(2000), '실미도'(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4), '웰컴 투 동막골'(2005), '의형제'(2010), '베를린'(2013),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연평해전'(2015), '인천상륙작전'(2016)으로 압축되더군요.
이들 한국전쟁 또는 분단을 소재로 한 상업영화를 나열해 놓고 보니, 남북의 화해와 화합을 강조하던 것에서 최근 들어 갈등과 반목을 다루는 방향으로 흘러오지는 않았나라는 추측이 들더군요.
이에 대한 확인을 위해 유명 영화평론가 오동진 씨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 "사회와 영화 속 레드콤플렉스, 사라져야 할 정신적 증후군"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기계체조 선수인 한국의 이은주(오른쪽)와 북한의 홍은정이 최근 연습 도중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CNN에 소개된 이안 브레머 트위터 갈무리)
오동진 씨는 "예전에 'JSA' '웰컴 투 동막골'이 나왔을 때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닫힌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넓게 보면 이런저런 다양한 시선들이 분출되고 있는 시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우리 사회가 꼭 우경화 됐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사회 분위기는 진자추처럼 왔다갔다 하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우올림픽에서 남북 선수의 만남에 대한) 댓글들을 보면 이러한 다양한 시선들에 대한 균형잡힌 해석이나 길잡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절감해요. 여전히 젊은 세대들에게조차 소위 '레드콤플렉스'(공산주의에 대한 과민한 반응)가 강하게, 공고하게 남아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죠."
그는 최근 들어 한국 영화계에서 우파 이데올로기를 강하게 드러내는 영화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최근 논란을 부른 '인천상륙작전' 역시 완벽하게 우파적 시선으로 만들어졌다고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어쨌든 우리 사회 안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고 있는 시기라고 봐요. 다만 그것을 담아낼 사회적 공기(公器), 예컨대 언론이나 사회적 리더, 공교육에서 균형 잡힌 해석, 가이드, 지침이 부재한 상황인 거죠. 대중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아노미 현상(혼돈·무규범 상태)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어쨌든 분단 현실에서 한국영화가 이를 다루는 방식은 일관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여겨져요. '은밀하게 위대하게'까지는 북한에 대한 변화하는 시선이 일정하게 반영돼 왔다면, '인천상륙작전'이 나온 것 역시 다양화된 시선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거죠."
다만, 그는 '연평해전'과 '인천상륙작전'은 결이 다른 영화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과 달린 연평해전은 '의도'가 '영화'를 앞서 있다"는 것이 그의 표현입니다.
"연평해전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린 영화예요. 의도적으로 군의 지원을 받는 등 상업영화의 정통 코스, 그러니까 아이템 발굴·선정부터 기획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거든요. 기획 의도에 특정한 이념적 태도를 깔아두고 추진됐다는 점에서 정치적·군사적 의도가 영화보다 앞서 있는 경우죠. 반면 '인천상륙작전'은 리암 니슨이 연기한 맥아더라는 인물의 이미지를 탈색시키면 사실 평범한 첩보스릴러예요. 그레고리 펙 주연의 '나바론 요새'(1961)에서 나치와 싸우는 미군의 관습적인 구조를 가져온, 할리우드 장르영화를 따라간 형태인 거죠."
"분명히 현재 우리 사회의 레드콤플렉스가 보다 공고화된 면이 있지만, 한국 영화계는 수위 조절을 하면서 그것을 거르고 걸러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입니다.
"특정한 정권의 성향을 그대로 작품에 반영하면 첫째로 장사가 안 된다고 보는 거죠. 그게 상업영화의 기본적인 요건이니까요. 예를 들어 다음에 보다 민주화된 정부, 조금 더 역사 인식을 지닌 진보 정권이 탄생한다면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 '문세광 사건' 등도 모두 영화로 들춰낼 겁니다. 이들 사건에 대한 시나리오는 있는데 제작을 못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전혀 얘기가 안 된다'는 둥 '시나리오 자체를 만들 수 없다'는 둥 '그걸 영화로 다룰 수 있겠냐'는 둥 영화 자체를 억압할 수 있는 분위기는 이젠 있을 수 없다는 거죠."
오동진 씨는 "연평해전과 같은 영화에 일정하게 반영돼 온 레드콤플렉스는 분명히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레드콤플렉스는 다양한 시선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현상을 왜곡시키는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레드콤플렉스는 건강한 좌파, 건강한 우파의 문제가 아니라 좌우 모두에서 없애기 위해 애써야 할 정신적 증후군이잖아요. 물론 (한국 사회가 민주화 되면서) 레드콤플렉스를 없애려고 노력해 왔죠. 그런데 지난 10년간 이를 교육적으로 없애거나 완화시키려는 노력이 부재했고, 한편으로는 레드콤플렉스를 오히려 자극하려는 정책 집단이 더욱 공고해진 측면이 이어져 왔다고 봐요. 이러한 흐름 안에서 올림픽의 남북 선수들에 대한 댓글도 나오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