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끝자락 토요일 오후, 낮 기온은 31도까지 올라갔다. 하루 평균 약 20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은 사람이 가득했다, 여느 평범한 주말 저녁처럼.
오후 6시 41분. 강남역(교대방면)에서 "스크린도어가 닫히지 않는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강남역을 관리하는 서울메트로는 곧바로 스크린도어 관리 하청업체인 유진메트로컴에 연락했다.
◇ 강남역 10-2 승강장
(사진=자료사진)
강남역 스크린도어 정비를 맡게 된 이는 마침 토요일 근무를 하던 A 씨. 20대 후반에 입사 2년 차인 그는 다소 말수가 적지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20대 노동자였다.
연락을 받은 A 씨는 강남역 역무실에 들러 스크린도어 이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10-2 승강장'으로 향했다. 이때만 해도 모든 것이 평범했다.
오후 7시 20분. '10-2 승강장'의 스크린도어는 열려 있었다. "지금 신도림역 방향으로 가는 내선순환, 내선순환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내방송을 듣고 몰려드는 승객들이 위태로워 보였다.
지하철 운행 시간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려면 최소 '2인 1조'로 작업해야 한다. 원칙은 그렇다. 현실은? 여건상 불가능했다. 회사는 무리해서 2인 1조 시스템을 시행하지 않았다. 어차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회사 막내인 A 씨는 으레 그랬듯, 홀로 스크린도어 앞에 섰다.
여자친구는 A 씨가 혼자 작업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중학교 때부터 만나 결혼 날짜까지 잡은 사이였다. 예비신랑이 혼자 위험한 일을 하는 걸 반길 리가 없다.
A 씨는 스크린도어 안쪽으로 들어가 센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폭이 채 30㎝ 남짓한 공간. 허리를 곧추세워야 그나마 작업 공간이 확보된다. 자칫 몸을 잘못 놀렸다가는 선로로 떨어진다.
최악의 경우 달려오는 지하철에 부딪힐 만큼 위험하다. 다만 역무실에 수리 중이란 사실을 알렸으니 열차가 진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유일한 안전 장치였다.
잠시 뒤. 녹색 쇠붙이는 시속 80㎞로 달려왔다, 멈추지 않고.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억'하는 신음과 '쿵'하는 소리와 함께 A 씨는 20m 가량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인 채 끌려가다 숨졌다. 역무실의 통제는 없었다.
◇ 피해자에서 책임자로
(사진=지하철 자료사진)
서울메트로와 유진메트로컴은 사고 원인을 A씨의 과실로 돌렸다. 유진메트로컴의 고위 간부는 경찰 조사를 대비해 직원들 단체 채팅방에 '2인 1조로 출동했다고 허위로 진술할 것'을 지시했다. 강남역 부역장은 'A 씨가 정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인 1조 작업이 애초에 이뤄질 수 없었던 내막은 쏙 빠졌다. A 씨는 절차를 지키지 않은 사람으로 몰렸다. 언론은 이들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A 씨는 졸지에 사고를 내고, 열차 운행을 지연시켜 승객들에게 피해를 끼친 '책임자'가 됐다.
입을 함부로 놀린다고 진실이 덮어지진 않는다. 하루 이틀 지나며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드러났다. 사고는 당연히 A씨 때문이 아니었다. '2인 1조' 근무 수칙을 지키지 않은 유진메트로컴과 열차를 통제하지 않은 서울메트로 탓이었다.
유진메트로컴은 뒤늦게 유가족을 찾아갔다.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웬 서류를 내밀었다. '도장을 찍어야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엉겁결에 내준 지장 아래 '불처벌 의사 확인서'에는 "A 씨가 회사에 보고도 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작업하다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서울메트로와 유진메트로컴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끝까지 A 씨의 과실이라고 우겼다. 유가족과 합의한 내용을 당당하게 들먹였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 유가족과 달리 사람들은 이 사고를 금세 잊었다. 아침저녁으로 지하철에 몸을 맡기면서도. 해가 바뀌고, 혐의 입증이 어렵다는 조그마한 기사가 신문 모퉁이에 실렸다. 그렇게 하루하루 무뎌져 갔다.
◇ 구의역 9-4 승강장
(사진=자료사진)
지난 5월 28일 토요일 오후. 이번에는 '구의역'이었다. 스크린도어가 멈췄다. 외주업체 은성PSD의 직원이 출동했다. 오후 5시 57분. 지하철이 멈췄고 사람이 죽었다.
A 씨보다 조금 더 젊은, 우리 나이 20살의 김 모 군. 그의 가방에는 여러 공구와 숟가락, 그리고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쇠붙이가 그를 덮치지 않았더라면 작업을 마치고 끼니를 때울 요량이었나 보다. 생일을 하루 앞둔 저녁으로.
구의역 '9-4 승강장'.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는 승객들 사이로 국화꽃 한 송이가, 또 메모지와 펜이 놓였다. 누군가의 '온기'가 사람들의 '용기'를 자극했다. '열기'라는 단어를 붙일 법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사람을 지키는, 그러나 사람을 죽인 스크린도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추모의 벽이 됐다. 눈물을 흘렸다. 잘못을 빌었다. 용서를 구했다. A 씨의 죽음은 김군을 지켜주지 못했다. 김군의 죽음은 달라야 했다.
'묻지마 여혐 살인'이 벌어진 강남역 10번 출구를 뒤덮었던 분노가 구의역 '9-4 승강장'으로 옮겨 붙었다. 마침내 정치인들도 움직였다. 언론도 달라 붙었다. 강남역 '10-2 승강장' 사고와는 분명히 달랐다.
◇ 책임자에서 피해자로
서울메트로 사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정수영 안전관리본부장과 관계자들이 구의역 대합실에서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 중 숨진 김모(19) 씨의 사고와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 후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황진환기자
별안간 '메피아'가 등장했다. 마치 땅에서 솟은 것처럼. 고질적인 갑을 관계, 정규직의 횡포, 끝도 없는 비리가 폭로됐다. 몇 년을 이어진, 알고도 모른 척 하던 문제들이 속속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봇물이 터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메트로의 비리, 스크린도어 정비의 외주화, '메피아' 문제에 대해 정확히 몰랐다는 것을 시인했다.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메피아'를 뿌리 뽑고, 스크린도어 정비는 직영으로 전환할 것도 약속했다. 서울메트로도 머리를 숙였다.
김군의 죽음은 A 씨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2013년 1월 19일 성수역에서 시작된 세 청년의 죽음이 새로이 조명됐다. 스크린도어 사고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부각됐다. 경찰은 9개월 만에 강남역 부역장과 유진메트로컴 대표와 본부장 등 모두 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이제 1년이다. 사과는 없었다. 합의서에 손가락을 내준 A 씨의 아버지는 서울을 떴다. 시간이 흘러도 죄책감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지난한 법적 다툼이 남았다.
'구의역' 그 너머 '강남역'에서도 우리는 사람을 잃었다. A 씨는 김군을 지켜주지 못했다. 김군은 달라야 한다. 또 다른 B 씨는, 이 모 군은 이제 없어야 한다. 그것은 순전히 살아남은 우리들의 몫이다. 2013년 성수역 심 모 씨, 2015년 강남역 A 씨, 2016년 구의역 김 군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