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그림은 꿈이고 미래였다. 그가 군대를 다녀오고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장 교수를 만났다.
장 교수는 디자인 분야에서 주목받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적지 않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잘못된 만남'이었다.
"내 사무실에서 일해 볼래?"
장 교수는 디자인 관련 상도 많이 받고 방송에도 출연하기도 했다. 관련 분야 협의회 회장까지 맡고 있어서 인맥도 엄청났다. 힘과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의 제안. 그는 장 교수와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장 교수는 그를 자기가 운영하던 회사에 취직시켰다.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협의회 사무국이었다. 그는 세 명의 동료와 함께 일했다. 동갑내기면서 대학 친구인 A, 교수의 조카 B, 회계를 담당하는 동료 C.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신분이었던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내가 너 교수 만들어 줄게"
장 교수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장 교수가 힘을 써 교수가 된 사람도 있는듯 했다. 그는 장 교수와 함께라면 자신의 꿈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다.
- 아침에 설거지하는데 제대로 안 돼 있고 비호감 행동을 해 몽둥이와 싸대기.
- 업무시간에 졸아 지적. 엉덩이 10대. 등짝 20대.
- 믹스커피를 4개 타 먹음. 발바닥 6대씩 총 12대.
이른바 '비호감 조치'. 정규직으로 전환 된 지 1년 쯤 지났을까. 장 교수와 동료들은 그를 때리기 시작했다. 업무 실수, 외모 불량, 태도 불량 등 '비호감 조치'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저 때리기 위해 '없는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주먹과 손바닥으로 맞는 것은 기본이었다. 야구방망이와 알루미늄 막대기도 동원됐다. 슬리퍼로 뺨을 때리는 '쓰싸', 머리를 내려치는 '쓰대'라는 용어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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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장 교수가 때렸고, 나중에는 교수의 지시로 동료들까지 때리기 시작했다. 나중엔 그들 모두가 그를 '동네북' 취급했다.
어느 날 동료 1명이 화장실에서 노란색 액체가 담긴 종이컵 하나를 들고 왔다. 교수는 그에게 마시라고 했다. 노란색 액체는 동료의 소변이었다. 거부하자 폭행이 이어졌고 하는 수 없이 그는 역겨운 액체를 목으로 넘겼다. 이렇게 시작된 소변 먹이기는 양이 점차 늘어났다.
"인분을 먹고 다시 태어나라"
소변에서 만족하지 않은 장 교수는 그에게 인분까지 먹였다. 장 교수와 동료들은 이것을 '특별한 컵'이라고 불렀고 조사결과, 16여 차례나 그에게 먹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장 교수에게 벌금도 냈다. 슬리퍼 끌기, 업무 실수, 외모 불량이 벌금의 이유였다. 처음에는 만원이었던 벌금이 나중에는 100만 원 이상이 되기도 했다. 돈이 없던 그는 반강제로 제2금융권에 4,000만 원을 대출받았고, 대부분을 벌금으로 내놓았다.
장 교수는 그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채무이행각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1억 3,000만 원 상당이었다. 교수는 변호사를 통해 각서의 공증까지 받았다. '가족에게 피해 사실을 알릴 경우 금전 보상을 해야 한다'는 문구도 들어 있었다.
동료 A와 B는 그와 함께 사무실에서 숙식했다. 24시간 동안 그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교수도 자리를 비울 때면 어김없이 스마트폰을 켰다. 스마트폰 속 화면에는 아프리카TV 비공개 채널을 통해 그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장 교수는 그걸 보고 폭행과 학대를 지시했다.
"도망가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릴 거야"
이제 그는 자존감을 완전히 상실했다. 자유도, 사생활도, 도망칠 곳도, 희망도 없었다. 그는 그곳에서 짐승보다 나을 게 없었다.
하루는 교수와 동료들이 그의 손과 발을 묶었다. 입에는 재갈을 물렸고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웠다. 그리고 비닐봉지 안쪽으로 얼굴을 향해 스프레이를 뿌렸다. 고농축 고추냉이 원액의 호신용 스프레이였다. 피부를 칼로 긁듯 얼굴이 타들어 가는 고통. 비닐봉지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소리도 지를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교수와 동료는 이것을 '가스'라고 불렀다. 그는 40여 차례 '가스' 고문을 당하며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전기충격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오줌까지 싼다. 그걸 할까 말까 생각 중이야"
장 교수는 그에게 전기충격기 이야기까지 꺼냈다. 그는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뜻하지 않은 '도움'이 찾아왔다. 장 교수는 그에게 식당 아르바이트 일을 시켰다. 식당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던 중 다른 직원이 그의 몸을 보았다. 심한 상처와 온몸 가득한 멍.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직원이 그에게 얼핏 들은 얘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직원은 그를 안심시키고 휴대용 녹음기를 건냈다. 증거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그도 용기를 냈다.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녹음기에 담기 시작했다.
2015년 5월. 마침내 그는 결단했다. 그는 장 교수와 세 명의 동료가 있던 지옥에서 탈출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두 달 뒤. 장 교수의 비상식적이고 악마같은 만행이 세상에 공개됐다.
여론은 들끓었다. 장 교수가 누군지, 동료 A, B, C가 누군지, 네티즌들은 이들의 신상정보를 찾아 공개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끔찍한 만행은 하나씩 추가됐다. 장 교수가 그를 감시할 때 사용했던 아프리카TV 방송은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장 교수와 동료 A, B, C는 법정에 섰고 2015년 11월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장 교수에게는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법원은 '상식을 넘는 극악한 범죄', '인간 존엄성을 훼손한 정신적 살인'이라고 말했다. A와 B는 각각 징역 6년, C에게는 징역 3년의 형이 선고됐다.
장 교수와 세 명의 동료는 항소했다. 항소심을 거쳐 2016년 8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장 교수는 징역 8년, A는 징역 1년 6개월, B는 징역 4년, C는 징역 2년으로 감형됐다.
'악마들'은 이제 곧 다시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