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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하루 장주희입니다. 이슈와 관련된 더 깊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시간, ‘이강민의 비공식 랭킹’, 이강민 아나운서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오늘은 어떤 랭킹을 준비하셨나요?
= 지난 24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면서 여권의 반발이 거셉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했고, 새누리당은 국정감사 보이콧을 선언했는데요.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장관 해임 건의안은 지금까지 80차례 제출됐고 김 장관을 포함해 여섯 번 통과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재수 장관 이전에 해임 건의안이 통과된 장관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 해임 건의안이 통과된 장관, 누가 있었나요?
= 가장 최근 가결된 건 지난 2003년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이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킨 건데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미국 장갑차 점거 시위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물었습니다. 당시 김 장관의 해임건의안은 민주당이 불참한 가운데 사실상 한나라당 단독으로 23분 만에 처리돼 논란이 됐는데요. 당시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국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헌법을 유린하는 것"이라며 '탄핵' 위협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김 장관은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임계를 냈습니다.
▶ "국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헌법을 유린하는 것이다", 이 말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했다는 거죠? 여러 생각이 드네요. 해임 건의안이 통과된 장관, 또 누가 있었나요?
= 지난 2001년에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건의안이 통과됐습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8·15 민간 방북단의 친북 활동 등을 문제 삼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실패를 추궁했고, 그 책임자였던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는데요. 임 장관의 해임건의안은 민주당과 함께 공동여당이었던 자민련 의원들이 이탈표를 던지며 가결돼 DJP 공동정부가 파국을 맞았고, 정국 혼란도 가중됐습니다. 임 장관의 해임 건의안 가결은 헌법에서 해임 건의안 가결에 따른 강제 해임 규정이 삭제된 뒤 첫 사례였는데요. 그래서 법적 강제성은 없었지만, 임 장관은 해임안 의결 다음 날 스스로 사의를 표했습니다.
▶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국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네요. 또 어떤 경우가 있었나요?
= 지난 1971년에는 오치성 내무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이 가결됐습니다. 특수부대원들이 일으킨 이른바 '실미도 사건' 등의 치안 책임을 물은 건데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공화당 간부들을 청와대로 불러 해임건의안을 부결시키라고 지시했지만, 김종필계의 당내 주류에 불만을 품고 있던 김성곤, 길재호, 김진만, 백남억 등 이른바 '공화당 4인방'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오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가결됐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10·2 항명 파동'이라고 불렸는데요. 당시엔 해임 건의가 사실상의 의무 조항이었기 때문에 오 장관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항명'을 주도한 김성곤, 길재호 의원은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가 심하게 맞아야 했고, 결국 탈당해 의원직을 상실했습니다.
▶ 해임 건의안 가결로 의원이 중앙정보부까지 끌려가다니 참 무서운 시대였네요.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장관 또 누가 있나요?
= 1969년에는 권오병 문교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이 통과됐습니다. 신민당은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 실패와 장관의 반말 답변 등을 문제 삼아 권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제출했는데요. 권 장관은 임시국회에서 야당 의원이 질책성 질의를 하자 "회의록에 없잖아, 회의록에"라며 반말로 대들어 여야 의원의 반발을 샀습니다. 당시 총투표 수 152표 중 찬성 89표로 해임안이 가결됐는데요. 당론을 어기고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이 40여 명이나 됐습니다. 여기에는 3선 개헌으로 장기 집권을 노리는 박정희 대통령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는데요. 이에 크게 분노한 박 대통령은 "즉시 항명 의원을 색출해 일주일 이내에 제명하라"고 지시했고, 공화당은 양순진, 예춘호 등 주동의원 5명의 제명을 결정했습니다.
▶ 여러 가지 정치적 복선이 깔린 해임 건의안이었네요.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장관, 마지막으로 누가 있었나요?
= 우리나라 최초 해임 건의안 의결은 지난 1955년에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국회는 임철호 농림부 장관의 양곡, 비료 정책 실패 책임이 심각하다며 '장관 자질' 문제를 거론하고 불신임안을 가결했는데요. 실제로 임 장관은 '무능 장관'이라 불릴 정도로 자질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취임 5개월 만에 쌀값이 67%나 치솟고 대체재였던 밀가루값마저 2배로 폭등했는데요. 국회가 쌀 배급제를 요구하자 공매를 고집했고, 공매하면 쌀값이 어떻게 되냐고 묻자 "쌀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은 하느님만이 아는 일"이라고 답변해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당시 헌법에 '해임건의안이 가결되면 당해 국무위원이 즉시 사직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기 때문에 임 장관은 취임 반년 만에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 오늘은 해임 건의안이 통과된 장관들을 살펴봤는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 자질, 반말 논란부터 정치적 계산까지 다양한 이유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어쨌든 이 제도는 행정부를 감시하고 독선적인 행정부 구성을 견제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인 만큼, 제도 자체의 존재 의미가 분명히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회에서 의결할 때에도, 또 대통령이 의결 결과를 받아들일 때에도 제도의 의미를 무겁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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