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해경은 '고속단정 침몰사건' 당시 법 규정에 따라 '발칸포'도 발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해경은 그러나 공중에 권총을 발사하는 데 그쳤다. 이런 소극적인 대응으로는 중국 어선의 폭력 행위를 뿌리 뽑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기 대응에 보이지 않는 제약…무력감에 시달리는 '해경'"이제 해경이 3단봉이나 고무탄총, 권총만 가지고는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을 막을 수 없습니다."10일 오후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자리 잡은 중부해양경비안전본부에서 만난 한 해양경찰(38)은 7일 발생한 '해경 고속단정 침몰사건'에 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어 "해경 함정에 장착된 발칸포도 유사시에는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야 한다"며 강경한 발언도 쏟아냈다.
또 다른 해양경찰(43)은 "목숨을 걸고 해양 주권을 지키는 해경 대원들에게 무기 사용에 대한 권한을 확대하고 면책 조항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해경 대원들이 이번 사건을 보면서 '기존의 대응체계로는 한계가 있다'는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중국 어선들의 자체 무장이 견고해지고 선원들도 흉포화하기 때문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중국 선원들의 저항은 10년 전만 해도 해상특수기동대원들이 선상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몽둥이를 휘두르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엔 중국 선원들이 쇠 구슬이나 볼트를 던지거나 선상에 오른 대원을 향해 쇠파이프나 낫, 망치, 손도끼 등 흉기를 휘두르며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 어선들도 해경 대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현측에 '쇠창살'과 '등선방지용 그물'을 설치하는 등 자체 무장을 강화하고 있다. 또 아예 조타실 전체를 철판으로 감싼 이른바 '철갑선'도 급증하고 있다.
◇ '고속단정 침몰사건'…법규상 '공용화기'도 사용 가능해양경비법 제17조(무기의 사용)는 해양경비 활동 중 선박 나포와 범인 체포, 도주 방지, 위해 방지, 저항 억제 등을 위해서는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선박과 범인이 경비세력을 공격한 때에는 개인화기 외에 공용화기도 사용할 수 있다.
1500t급 이상 중대형 함정에는 20mm, 40mm 발칸포가 함포로 장착돼 있어 유사시에 선박 격침도 가능하다.
이번 '고속단정 침몰사건'의 경우, 중국 어선들이 일부러 들이받아 가라앉는 우리 고속단정을 다시 확인 충돌까지 한 만큼 당연히 공용화기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에 해당한다.
하지만, 법과 현실은 달랐다. 현장에는 3000t급 경비함인 3005함과 1002함이 있었지만, 해경은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도 공용화기는 사용하지 않았다.
'K1소총'과 'K5권총'과 같은 개인화기도 공중에 수십 발 발사하는 데 그쳤다.
중국 어선에 들이받히는 순간 가까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건진 인천해양경비안전서 조동수(50·경위) 단정장은 "중국 어선들에 겁만 주기 위해 공중에 사격했다"고 말했다.
해상에서는 배가 파도에 흔들려 정확한 조준 사격이 어려운 만큼 인명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한 것이다.
◇ '무기 대응 어디까지?'…명확한 지침 마련돼야이주성 중부해경본부장도 뒤늦게 "중국 어선의 폭력 저항에 대해 앞으로는 자제했던 무기대응 등 극단의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에는 공용화기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된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동안 해경이 얼마나 속수무책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미온적인 태도로는 중국 어선의 불법 행위를 뿌리 뽑을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중국 어선들에 대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러시아 등은 해군을 동원해 침몰시키는 등 강경대응하고 있다.
배복봉 대청도선주협회장은 "중국어선이 이렇게 폭력적으로 난동을 부리는 상황이라면 해경함정이 '포'라도 쏴서 일단 저지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해경이 국민안전처의 일개 '본부'로 위상이 추락하면서 중국 어선들의 '해경 공권력' 무시 경향도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결국 '중국 어선들의 폭력 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무기 대응을 확대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침과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상황에 따라 외교적 마찰도 각오해야 하는 문제인 만큼 해경 수뇌부의 독자 판단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정부와 국회가 서로 지혜를 모아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