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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물어봐 모욕감"…학부모들 전쟁터 된 학폭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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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 물어봐 모욕감"…학부모들 전쟁터 된 학폭위

    복수·한풀이 수단 등 황당 이유로 열리는 학폭위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1.서울 성북구의 한 고등학교. 성적 최상위권을 자랑하는 여학생 A 양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개최를 요구했다. 가해자로 지목한 학생은 A 양과 전교 1등을 다투는 B 양. A 양이 학폭위 개최를 요구한 이유는 '모의고사가 끝나면 시험점수를 물어봐서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모욕감을 줌', '나와 친한 친구와 친해져서 친구를 뺏어감', '살쪘다고 놀림', '평소 날 감시하는 시선으로 봄', '발표할 때마다 내게 불리한 질문을 함' 등이었다.

    #2. 강남구의 한 중학교 생활지도부 교사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7월 친구들 사이에 발생한 사소한 문제가 부모들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문제가 커졌기 때문이다. 발단은 이렇다. C 양이 평소 '동급생 D, E, F 양이 나를 괴롭힌다'며 학폭위를 요구했다. 하지만 학폭위 조사결과, 평소 이들의 관계가 돈독했고, 고의적 괴롭힘이나 따돌림은 없는 것으로 판단해 가해 학생들을 징계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후 이번엔 D, E, F 부모 측에서 'C 양이 자신들의 자녀를 괴롭힌다'는 이유로 학폭위 개최를 요구했다. 이번 학폭위도 같은 이유로 기각될 게 뻔하지만 학교 측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학폭위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3. 지난해 말 초등학교 5학년인 G 군, H 군 , I 군, J 군은 평소 서로의 옆구리를 찌르며 놀았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옆구리를 찌르고 도망가는 식으로 장난을 쳤는데, 어느날 G 군의 아버지가 이런 장난은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열린 학폭위에서 H 군과 I 군, J 군은 '서면 사과' 처분을 받았다. 곧바로 세 학생 부모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이들 부모는 같은 이유로 G 군을 학폭위에 회부했고, 학폭위는 G 군에게도 같은 처분을 내렸다. 화가 난 G 군의 부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사건은 학교 담장을 넘어 재판으로 비화됐다.

    ◇ "솔직히 지킬 수도 없고, 지켜서도 안된다"…일선 교사들의 일침

    학폭위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 제13조를 근거로 운영되고 있다.

    학폭법 제13조에 따르면, 학폭위는 피해 학생이나 그 보호자가 원할 경우, 학교는 무조건 학폭위를 개최해야만 한다.

    즉, 피해 학생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할 경우, 사실 관계나 사안의 경중을 떠나 무조건 학폭위가 개최돼야 한다는 것이다.

    중학교에서 10년째 생활지도부장 교사를 하고 있는 K 씨는 "솔직히 학폭위 관련 법은 지킬 수도 없고, 지켜서도 안 된다는 게 30년 넘게 교직을 맡아온 교사의 양심"이라고 털어놨다.

    K 씨는 "학폭위는 아무리 사소한 신고라도 들어오는 순간 피해 학생과 피해학생 보호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개최돼야 한다"며 "교사들에게 지도.선도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폭위는 어느 순간부터 감정 싸움을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됐다"며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보복성 폭대위 요구는 자제하는 게 학생과 학교 모두에게 좋다"고 덧붙였다.

    올해 처음으로 초등학교 생활지도 교사가 된 L 씨는 겁부터 난다.

    L 씨는 "아직까지 학폭위를 열어본 적은 없지만, 언제나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자식 문제'가 개입된 어른들의 싸움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걱정했다.

    이어 "아직 미성년자인 애들을 소소한 문제로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고 징계를 내린다는 게 교육적인 방법인지도 의문"이라며 "부모들이나 학생들 간 화해를 시키려고 해도, 자칫 '합의를 종영한다'고 오해받는 게 두려워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생활지도 교사가 이런 처지이다 보니, 점차 기피하는 보직이 됐고 어린 연차의 교사들이 맡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 학폭위 의무 개최 5년…지금 필요한 건 뭐?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학생.학부모가 원하면 학폭위가 무조건 개최될 수 있도록 법령이 개정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법.제도의 부작용을 돌아보고 개선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전수민 변호사는 "학교가 발생 사건을 선도적으로 해결하기보다 형식적으로 학폭위를 개최하고 실제 문제를 방기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며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을 자체적으로 선도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학폭위가 점차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 분쟁 조정'이란 애초의 목적에서 벗어나 상대 학생을 제도적으로 괴롭히는 분풀이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최희영 팀장은 사안 자체를 법률에 맡기기 이전에 자체 해결 및 합의를 강조했다.

    최 팀장은 "교육과 선도 등 여러 성격이 혼합된 학폭위에서 '내 자식'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며 "학생.학부모들이 피해자의 시각에서 사안을 이해해 법이 개입하기 전에 상호 원만한 합의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안의 경중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아이들 사이에 진정한 화해와 이해가 아이들의 안정된 학교생활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RELNEWS: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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