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김병준 국무총리 카드'에 이어서 국회를 방문해 국회에서 총리후보를 추천해달라며 야권으로 공을 넘겼지만 야당이 이를 공식 거부했다.
야3당은 박 대통령의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고 오는 12일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민 카드' 왜 야권은 계속 거부하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정국 수습책 논의를 위해 야3당 대표들이 지난 9일 국회 사랑재에서 회동을 갖고 있다.(좌측부터 국민의당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정의당 심상정) (사진=윤창원 기자)
▶ 야3당이 대통령이 제안한 '국무총리 추천' 카드를 거부했는데?= 그렇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9일 국회 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을 '일고의 가치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야3당은 이번 사태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명명하기로 했고, 오는 12일 광화문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당력을 집중해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강력한 검찰수사 촉구와 함께 별도 특검과 국정조사를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박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외치든 내치든 자격이 없다"면서 "대통령은 2선 후퇴도 퇴진도 아니하고 그냥 눈감아 달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문제의 본질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다. 여기에 우병우 사단의 국정농단이 다시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며 "그런데도 대통령은 국민의 불안을 외면한 채 다시 어떤 수를 부려 보려고 하는데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 박 대통령이 국회를 전격 방문해서 제안한 것인데 왜 이걸 거부하는 거냐?= 첫 번째는 박 대통령이 권력을 계속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사실상 '식물대통령'이나 다름없다. 남재희 전 장관은 '좀비대통령'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면 총리가 내각 통할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 보장하겠다고 했다. 청와대 배성례 홍보수석은 "이는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권한인 내각통할권, 임명제청권, 해임건의권 모두를 앞으로 총리가 강력하게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대통령이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그런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헌법 86조 2항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규정돼 있다. 대통령이 권한을 내려 놓고 총리가 권한을 행사는 구조가 아니라 대통령의 명을 받아 수행하는 총리라는 얘기다. 국민의 요구는 대통령의 권한을 내려놓으라는 건데 박 대통령은 이미 헌법에 나와 있는 내용을 되풀이한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어떠한 경우에도 대통령의 위치설정이 확실히 나와야 하고, 후임 총리의 책임이 어디까지인가 설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심상정대표는 "박 대통령이 2선 후퇴를 비롯한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한마디도 없었다. 총리를 누구로 할 것인지를 두고 소란 피울 일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이 권한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책임총리'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걸 야당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박 대통령의 제안이 야권분열과 시간벌기 꼼수로 보기 때문이다.
야3당이 김병준 국무총리 카드에 이어서 국회가 국무총리 후보를 추천하라고 한 것은 박 대통령이 권한을 내려놓고 2선으로 물러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야당에게 공을 떠넘기려는 의도로 보는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박 대통령의 제안은 시간을 벌고 야권이 총리후보를 두고 난타전을 벌일 것을 바라는 꼼수로 보인다"며 "대통령의 진정성 없는 제안을 야당이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사진=자료사진)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제시한 카드를 야당이 받아들이게 되면 야당이 먼저 돌팔매를 맞게 될 것"이라면서 "최소한 별도특검과 국정조사, 대통령의 2선 후퇴는 받아들여야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국민들이 수긍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이 임명한 검찰과 특검에게 조사를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대 국민 사과를 하면서 "앞으로 검찰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저는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에 있어서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이미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도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의 이 말이 진정성이 있으려면 검찰의 자유로운 수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우병우 민정수석에 이어 특수통인 최재경 민정수석을 임명했다.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특검도 '별도 특검'이라고 명시하지 않음으로서 국회에서 여야가 '별도 특검'이냐 '상설 특검'이냐를 두고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말로는 진상규명에 협조한다고 하면서 끝까지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놓지 않음으로서 법률적 책임을 모면하려 하기 때문에 야당으로서는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검찰인사권도 중요한 변수다. 박 대통령이 인사권을 계속 행사할 경우 검찰의 수사는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특히 우병우 사단이 검찰의 수사핵심부서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역없는 수사는 불가능할 것이다.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네 번째는 세 번째와 겹치긴 하지만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비선실세의 국정모독, 국기문란사건은 실체가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런데 그 실체는 법률적인 부분이 있고 정치적인 부분이 있다. 사법적으로 단죄하기 어렵지만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최순실씨의 국정개입 의혹은 국정조사를 통해서 실체를 밝혀야 한다. 모든 걸 검찰수사에 맡길 게 아니라는 얘기다.
별도 특검도 국정조사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세월호 참사 때처럼 진실이 묻힐 가능성이 매우 높을 수 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 야권은 총리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누굴 총리로 추천할 것인지를 두고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국회 추천이라고 했으니까 새누리당은 사사건건 딴지를 걸면서 시간을 끌 것이다. 그러면서 정쟁으로 물타기를 하고 지지층의 결집을 시도하면서 국민의 시선을 돌리려 할 것이다.
이미 곳곳에서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인터넷의 댓글이나 정체모를 이상한 글들이 카톡이나 밴드 등에서 계속 유포되고 있다고 한다.
야당으로서는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정의당 심상정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
▶ 야당이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하기로 했는데 그러면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 주장에 동참하게 되는 거냐?= 그건 다른 문제다. 민의의 도도한 흐름에 동참은 하지만 그렇다고 정당이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집회에 참석하는 것과 하야 또는 탄핵을 요구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광장은 광장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또 국회는 국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고 하는 그러한 고민이 있다"고 밝힌 대목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트럼프 충격을 갖고 안보나 경제 같은 국민안정 쪽에 포커스를 맞춰 또 꼼수로 넘기려 할 것"이라면서 "하야는 국민이 요구하는 것이지만 대통령이 결단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고, 탄핵은 현실적으로 200석이 넘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하는 것과 하야나 탄핵을 요구하는 건 다른 문제라는 얘기다.
▶ 야당이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혼선을 빚는 이유는?= 혼선으로 보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언론보도를 보면 '야권이 대통령의 총리추천 제안에 대해 혼선을 빚고 있다'거나 '당 별로 다른 셈법을 한다'는 등의 기사로 야당이 흔들리는 것처럼 부각시키고 있다,
야당이 혼선을 빚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을 흔들기 위해 '김병준 총리 카드', '한광옥 비서실장 카드'에 이어서 '국회 총리 추천 카드' 등 카드를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혼선을 빚고 있고 흔들리는 곳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다. 야3당 대표가 박 대통령의 제안을 하루만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거부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하기로 한 것은 이런 시각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두 차례 사과가 진정성이 있으려면 김병준 총리카드를 내밀기 전에 야권과 협의를 했어야 한다. 그리고 국회를 방문해 협조를 구하는 태도도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재임기간 내내 국회를 무시해온 박 대통령이 위기에 처하자 약속도 잡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국회를 방문해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해 달라'고 공을 던졌다.
'13분 방문'이나 '다들 심각한데 혼자 미소를 띤 모습'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진정으로 권한을 내려 놓고 민심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이렇게 노력했는데 야당이 거부한다'는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에 참가했던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정치9단으로 고지전에 아주 능하다'고 평가했다. 생존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사진=이한형 기자)
▶ 앞으로 야당이 선택 할 수 있는 카드는 뭐냐?= 분명한 건 지금 국면에서 야당이 선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민심의 도도한 흐름은 무당같은 최순실씨에게 국정을 내맡긴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는 12일 광화문 촛불집회에는 50만명이상 최대 100만 인파가 결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민심을 반영한 것이다.
정치평론가들이나 원로 현역 정치인들에게 야당이 무얼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까 대부분 '민심에 따라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정당이 앞장서서 박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거나 하야를 요구할 경우 정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민심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진상을 밝히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남재희 전 장관은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대통령에 대한 압박이면서 야권의 동력"이라면서 "야당은 단선 전략이 아닌 다양한 복선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건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이니까 36계 전략을 다 동원해야 전략이지 단순히 거국내각만 요구하면 실패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창렬 교수는 "야당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건 진상규명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별도 특검과 국정조사, 대통령의 2선 후퇴가 필수조건"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윤창원 기자)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거국내각 총리를 임명하고 최순실 사단과 우병우 사단을 제거해야 한다"며 "그래야 검찰수사가 제대로 되고 국정조사와 별도 특검이 이뤄지게 된다"고 말했다.
SNS에서 또는 일부 사회단체들이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에 소극적인 야당을 탓하면서 공격하지만 이는 도도한 민심의 흐름에 물타기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혁명이나 쿠데타처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새누리당 비박계는 12일 촛불집회를 지켜본 뒤 13일 오후2시 비상시국대책회의를 열어서 친박지도부 사퇴 등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