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소리'는 엔도 슈사쿠( 1923-1996)가 자신의 소설 '침묵'의 집필 과정과 출간 후 반응에 대한 소회를 정리한 책이다. '침묵'을 읽은 수많은 독자들이 '신은 침묵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데 대해 작가 자신은 "신은 침묵하지 않고 그 침묵 속에서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침묵>의 소리'는 엔도 슈사쿠의 문학 세계 전채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침묵'이 발표된 1966년을 전후해서 '침묵'의 주제인 기리시단(Christian의 일본 음역)에 관련된 단편들을 모아놓았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침묵의 제목이 나온 배경이다. 엔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지금 그 소설을 탈고했다면 '침묵'이라는 제목을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반대 의견이 많더라도 '양지陽地의 냄새'처럼 직설적이지 않은 제목을 골라서 붙였을 것이다. '침묵'이라는 제목은 정말 과장된 듯한 느낌이 들어서 민망할 때가 많다. 가능한 한 절제된 제목을 붙임으로써 그 속에서 독자 스스로 소설의 테마를 읽어내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엔도가 의도한 소설의 제목은 '양지의 냄새'였다. 후미에를 밟아 그리스도를 배반한 후 기리시단 주거지(실은 수용소)에서 굴욕적인 삶을 살던 페레이라. 그가 추운 겨울날 볕이 드는 양지에 나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회한에 잠길 때 거기에는 양지의 냄새, 고독의 냄새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붙이고 싶었던 제목이었다. 하지만 출판사의 강력한 권유로 '침묵'이라고 제목을 정하는데 동의했는데, 독자들은 제목으로부터 이미 신의 '침묵'을 읽어낸 것이라 여겼다.
'침묵'의 주제는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에 숨겨져 있으므로 이 부분을 읽지 않는다면 '신의 침묵'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다케다 토모쥬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는 17세기에 쓰인 일본의 고문서 자료집인 '조쿠조쿠군쇼루이쥬'에 수록되어 있는 '사켄요로쿠'로부터 엔도가 "발췌해서 고쳐 쓰는" 방식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판으로 편역하고, 그에 대한 해제를 붙인 것이다. 엔도는 이 "관리인의 일기"로 자신의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이런 형식도 사실은 드물다. 소설의 말미에 역사적 사료를 덧붙이다니.
"관리인의 일기"는 '침묵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자 엔도가 해설과 설명을 곁들여 수록한 것이다. 소설의 일부분으로 이해하도록 '부록'이라고 붙이지도 않았지만 독자들은 대부분 읽지 않고 지나쳐버린다. 한국에서는, 특히 '침묵'의 번역본에서는 몰이해가 더 심하다. 한국의 독자 역시 '침묵'을 침묵하는 신으로 이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소설 '침묵'에는 "관리인의 일기"라는 부분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침묵>의 소리' 역자 김승철은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 해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는 낯선 문체로 되어 있고, 더욱이 기리시단과 관련된 용어들이 그대로 등장하는 관리인의 일기를 역사적 자료를 단순히 첨가해 놓은 '부록'쯤으로 여긴 나머지, 독자들은 이 부분을 읽지 않은 채 '침묵'을 다 읽었다고 생각해서 책을 덮었고, 한국의 번역가들은 아예 생략해버렸다고 짐작된다." 그러니 한국 독자에게는 신의 깊은 침묵만이 소설에 남아 있다. 그래서 본서를 펴내면서 저작권자(엔도 슈사쿠의 아들 엔도 류노스케)에게 허락을 받아 엔도의 "관리인의 일기" 전문을 실음과 동시에 역자의 해제 및 해설을 덧붙여 이 책에 수록하였다.
역자의 말'침묵'에서 엔도가 형상화시켰던 기독교 신앙은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감싸 안아주시는 것처럼 약한 인간을 무한히 끌어 안아주시는 신에 대한 신앙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박해 받던 시기에 무자비한 방법으로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를 받았던 사람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신앙을 버렸노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조차 버리지 않고 끌어안으시는 신,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신을 엔도는 '침묵'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침묵'은 서구 기독교의 탈서구화를 통해서 기독교 신앙을 일본과 아시아에 뿌리내리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기독교 신앙의 토착화를 위한 시도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침묵'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그리고 비단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울릴 수 있는 신앙을 찾고자 애쓰는 한국의 모든 종교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번에 엔도가 '침묵'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쓴 작품인 '<침묵>의 소리'를 한글로 옮기면서, 그동안 한국에는 소개되지 못했던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를 번역해서 실었습니다. "관리인의 일기"를 읽음으로써 '침묵'의 주제는 "신의 침묵"이 아니라, "신은 침묵 속에서 말씀하고 계신다"라는 점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엔도의 '침묵'은 '<침묵>의 소리'로서 다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는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역자 '책을 펴내며' 중에서
CBS노컷뉴스 김영태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