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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한국작가회의는 안돼!'…국정원의 황당한 예산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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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한국작가회의는 안돼!'…국정원의 황당한 예산 개입

    진보단체 지원 끊으려 심사 끝난 사업도 '폐지'

    예술인복지재단 홈페이지 캡처.

     

    “당시에는 (배후에) '국정원이 있는 게 아닐까'하고 막연히 생각만 했는데, 최근 드러난 블랙리스트 사건을 보니 이제 퍼즐이 맞춰지네요.” -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배인석 사무총장

    2014년 3월 27일 예술인복지재단은 갑작스레 ‘현장예술인교육지원사업 폐지’와 ‘예술인 학습공동체 지원사업 예산 삭감’을 공고한다.

    이어 ‘현장예술인교육지원사업비’ 10억 원 전액과 ‘예술인 학습공동체 지원사업’ 예산 22억 원 중 10억 원을 합한 20억 원을 ‘예술인 긴급복지지원사업비’에 보태겠다고 했다.

    이유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예술가의 사망으로 인해 증액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예술인들은 복지재단의 취지는 이해했지만, 과정을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현장예술인교육지원사업’은 약 한 달 전에, ‘예술인 학습공동체 지원사업’은 이틀 전에 심사를 마친 상황이었다.

    ‘예술인 긴급복지지원사업비’는 이미 81억 원의 예산을 확보해 시행되던 사업이었다. 그런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심사까지 끝난 사업들의 예산을 갑자기 없앤다고 하니 납득이 될 리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이해할 수 없는 공지가 나온 배경에는 ‘진보성향 예술단체’를 지원하지 않으려는 국정원과 문체부의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이 예술인복지재단 내부자의 입을 통해 드러났다. (기사 : [단독] 국정원, '블랙리스트' 예산 삭감에 직접 개입, 2017.01.08)

    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관계자 A씨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심사를 끝내고 발표만 남았는데 갑자기 문체부에서 사업을 취소하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선정된 단체에 한국작가회의와 민예총이 있었다”며, “(문체부에서) 자기네 마음에 안 든다고 10억 원이 넘는 사업을 통으로 날려버렸던 것"이라고 밝혔다.

    ◇ 지원 받고 싶으면 '시위 불참 각서 쓰라' 요구하기도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의 세월호 동조단식. (사진=한국작가회의 홈페이지 캡처)

     

    지원사업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된 (사)한국작가회의와 민예총은 문화예술계 내 대표적인 진보성향 단체들이다.

    한국작가회의는 박정희 정권이었던 1974년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외치던 ‘자유실천문인협회’의 정신을 계승한 단체이다.

    민예총은 민족예술 창조에 뜻을 함께 하는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으로, 1987년 6월항쟁 이후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된 민주화운동에 부응하여 이듬해 설립됐다. 고은·백낙청·이건용·임진택 등이 발기인이다.

    두 단체 관계자들은 2014년 갑작스런 지원 취소 사업에 대해 "황당했다"면서 "당시에도 보이지 않는 윗선의 외압을 의심했다"고 회상했다.

    한국작가회의는 갑작스런 사업 폐지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 부처의 외압과 개입 때문이 아닌가”라고 따졌었다.

    당시 한국작가회의 사무차장이었던 이태형 소설가는 “사업 계획을 다 짜놓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예술인 긴급복지지원사업비’로 돌린다고 해서 황당했다”면서 “한국작가회의라서 (지원사업에서) 배제되는 건 이전부터 체감했고, 내부적으로 기정사실화 했다”고 전했다.

    그는 지원 사업 등에서 배제되는 일이 이명박 정부 때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잡지 발간 지원을 받으려면 ‘시위 불참 각서’를 쓰라고 해서,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전국고교생백일장 장관상 지원을 보이콧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후 "문체부가 '지원금은 각서 없이 주기는 힘들지만 장관상은 받아달라'고 거듭 권유해 다시 장관상을 받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김종덕 문체부 장관 때는 장관상 신청 기간이 되면 안내 메일을 보내주는데, 안 보내서 시기를 놓치게 하거나, 신청을 해도 떨어뜨리는 등 노골적으로 배제하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말했다.

    배인석 민예총 사무총장은 2014년 상황에 대해 “공모를 한 뒤 심사까지 해놓고 발표 직전 사업 자체를 없애 실무자들은 황당해 했다. (외압) 심증은 가기는 했지만, 발표가 난 뒤 없어진 게 아니라서 대응하기는 곤란했다”며 “지금 ‘블랙리스트 등에 문체부나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니 퍼즐이 맞춰진다”고 덧붙였다.

    ◇ 국정원, 정보수집 넘어 예산 집행 과정에도 관여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 지원업무를 맡았던 A씨는 7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진보성향 단체를 배제하는 데 문체부와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2015년 2월 평소에는 관여하지 않았던 문체부가 예술인 지원 사업에 심사위원과 심사절차를 꼬치꼬치 캐묻는가 하면, 이레적으로 신청자 명단까지 요구했다는 것.

    게다가 선정자 발표날이 됐는데도, 무작정 기다리라고만 했고, A씨가 조급한 마음에 늦어지는 이유를 묻자 “명단을 국정원에서 스크린 하고 있어 늦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정원까지 걸친 뒤, 45개 단체 이상을 선정하려던 계획은 10여 개가 빠진 34개 단체로 축소되어 최종 하달됐다. 10여개 단체는 국정원의 스크린으로 예산에서 배제된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2014년 갑작스런 사업 취소를 포함해 이 모든 과정이 “(진보 예술단체를) 고사시켜버리겠다는 (문체부와 국정원의) 전략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예산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보 수집 차원을 넘어 예산 집행 과정에서 '검증작업'을 벌였다면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 주도자 역할을 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RELNEWS: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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