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보수성향 인터넷매체와 인터뷰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최순실 국정농단 등 사유로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보수성향 인터넷매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기획설'을 제기했다. 자신을 탄핵한 게 특정 '기획세력'이라는 얘기다. 이는 지지자를 뺀 나머지 국민들을 기획세력으로 몰아가는 무리한 화법이란 지적이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26일 "대통령이 언급한 기획의 주체가 누구인지 아는 바 없다"면서 "대통령 입장에서 지금까지의 경과를 볼 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는 '미리 의상실 CCTV 찍어둔 사람들' 등 의심스러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은 전날 한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진행과정을 추적해보면 뭔가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발적으로 된 건 아니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기획설을 제기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지목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들 언론사의 취재·보도가 박 대통령에게 결정타를 날렸기 때문이다. 야권의 한 인사는 "보수성향 언론사들의 '배신'에 대한 분노의 표현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여름 '우병우 비리' 의혹을 최초 보도했고, 계열사인 TV조선은 훨씬 이전부터 '최순실 의상실 동영상'이나 '김영한 비망록' 등을 확보해 보도 시점을 노리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우병우 사태 때 참모의 입을 빌어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다"고 맹비난한 바 있다.
친박계 의원을 앞세운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 비리 폭로전, '우병우 감찰' 주역인 이석수 특별감찰관 비난 등 청와대·친박계의 역공도 벌어졌다.
중앙일보는 최근 박 대통령으로부터 '문화계 블랙리스트 보도'로 민·형사 소송을 당했고, 계열사인 JTBC는 '최순실 태블릿PC' 관련 첫 보도를 내놨다. 박 대통령 골수 지지세력은 JTBC 규탄 시위를 수시로 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출입하는 언론사 기자단을 배제하고 보수색 짙은 인터넷매체를 인터뷰 대상으로 삼은 것도 '언론 불신'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단독 인터뷰를 한 매체는 그동안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입장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언론을 넘어 박 대통령을 공격하는 모든 세력이 기획세력으로 '엮였다'는 해석도 있다.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개혁돼야 할 국회·언론·노조·검찰 4대 세력이 대통령을 침몰시키고 있다'는 질문자에게 "그동안 추진해온 개혁에 반대해온 세력도 분명 있을 것이고,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도 합류한 게 아닌가 한다"고 호응했다.
이에 대해 야권의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 견제가 임무인 헌법기관, 의혹 검증이 사명인 언론기관, 범죄 혐의를 규명·단죄할 수사기관 등을 이해가 맞지 않는다고 반개혁·반체제로 몰아붙이는 것은 유신독재 시절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박 대통령 측이 인터뷰 당일 짜맞춘 듯 기획된 행보를 보였다는 반박도 나온다. 같은 날 탄핵심판 대리인단은 '국회 내통설'을 제기하는 등 헌재 재판부를 '모독'했고, 최순실도 특검에 소환되면서 '강압수사'를 당했다며 선전전에 나섰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음모집단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은 기가 막힌다"며 "대통령과 최순실, 대리인단 등이 공모해 총반격에 나선 것이다. 극우보수 세력 총궐기를 선동해 남남갈등을 부추겨서 위기 돌파하겠단 전략"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