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시간 동안의 피의자 조사와 밤샘 조서 검토를 마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전 검찰을 나서 삼성동 자택으로 귀가하고 있다. 이한형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법리공방을 뒤로한 채 외곽 여론전에만 골몰하다가 결국 자충수를 뒀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의 수사에 대해 '사상 누각'이라는 등 모욕적인 표현으로 공격한 것부터 영장청구를 앞두고는 '경의를 표한다'고 엉뚱한 의견을 내놓은 것도 결국 득보다 실이 됐다는 평가다.
지난해 11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박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하자, 유영하 변호사는 “증거를 따지는 법정에서는 한 줄기 바람에도 허물어질 사상누각”이라고 말했다.
수사 결과가 전혀 사실이나 법적인 근거없이 엉터리로 이뤄졌다는 뜻으로 이런 거침없는 평가를 내놨다. 검찰 수사 와중에 이런 거친 발언은 이례적인데, 검찰을 향한 발언이라기보다는 보수 단체 등 박 전 대통령 지지자를 향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유 변호사는 또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며 법리와 무관하게 감정에 호소하기도 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측근인 친박 의원들과 일부 변호인단은 탄핵 반대 집회 등에 참여하면서 장외 여론전에 몸을 던졌다. 법리로 싸우기보다는 거리에서 여론을 형성해 검찰에 압박을 가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이어 검찰 대면조사까지 당하는 등 갈수록 수세에 몰렸다.
이런 와중에 박 전 대통령 측 손범규 변호사는 지난 21일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에 대해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손 변호사는 “악의적 오보와 감정 섞인 기사, 선동적 과장 등이 물러가고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을 봤다”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신 검사와 검찰 가족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감정섞인 반응으로 일관해오다가 갑자기 검찰에 경의를 표한다며 태로를 180도로 바꾼 것이다. 이는 구속만을 피하기 위해 검찰에 저자세를 취했다는 해석을 낳았다.
하지만 검찰과 뭔가 교감이 이뤄진듯한 이 말은 결코 박 전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검찰 입장에선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경우 손 변호사의 말 때문에 되레 봐주기를 했다는 비판만 거세질 판이었다.
검찰이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엄격한 잣대를 댈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셈이다.
검찰에서도 "(손 변호사의 말이) 무슨 말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같은 배경에는 변호인단이 박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깰수 있는 논리나 사실 관계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에 ‘특수통’ 검찰 출신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최재경 전 민정수석 등 대형사건이 잔뼈가 굵은 인물들은 변호인단에 합류하지 않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효과적인 조언을 하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