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인수위법) 통과가 무산되면서 새정부 출범 이후 조각 준비 작업 등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새로 시작하는 정부가 선거 때 제시했던 국정운영 비전과 공약을 실제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내각을 구성하는 준비단계인 ‘인수위원회’도 꾸리지 못한 채 시작되기 때문이다.
현행 인수위법에 따르면 '대통령 당선인'은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고 총리후보자의 추천으로 국무위원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이번 5.9 대선에서 선출된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기 때문에 인수위법 적용이 불가능하다. 대통령 파면이라는 유례없는 상황에서 드러난 법적 공백이다.
◇인수위법 개정안 불발...불편한 '동거정부'4당 원내대표와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30일 인수위법 개정안의 직권상정을 논의했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현행 인수위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인수위법 개정안에 '대통령'이 내정한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무위원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담았다. 거기에 현 총리가(황교안 총리) 추천된 국무위원을 제청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조항이 바른정당을 중심으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발목이 잡혔다. 국무위원의 제청권이 총리에게 있다고 명시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현행 법대로면 국무총리 후보자가 최종 임명 되기 전까지는 새로운 내각 구성은 지연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통상 총리 임명을 위해 국회 동의를 얻는데 한 달여의 기간이 걸렸던 전례 등을 고려할 경우 새 정부는 전 정권의 장관들과 정부를 운영해 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새로운 국무총리 임명 전에 장관을 교체하고 싶으면 황교한 권한대행에게 장관 후보자에 대한 제청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이재정 원내대변인은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한 경우에는 4당 원내대표들이 합의해야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직권상정을 할 수 있는데 저쪽(바른정당, 자유한국당)이 합의를 안해주니 인수위법을 통과시킬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령으로 자문 기구 구성은 가능…내각 구성은 차질인수위법 개정안이 무산되면서 다음 정부는 현행법대로 30일만 인수위를 구성할 수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4당 원내대표는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대신 '위원회는 대통령 임기 시작일 이후 30일의 범위에서 존속한다' 현행 법 조항을 넓게 해석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견이 있다. 청주대 정치안보국제학과 송기복 교수는 이와 관련해 "잘못된 정치적 합의이고 비법률적"이라며 "현행법에는 '존속'규정은 대통령 임기전에 구성된 인수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며 법 적용대상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수위법 개정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법안 발의를 주도한 민주당과 행정자치부는 인수위법 개정은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대통령령으로 인수위를 구성하는 우회적인 방안을 찾고 있다.
정부조직법 4조에는 행정기관은 그 소관 사무의 범위에서 필요한 때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자문기관 등을 둘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 안전행정위 관계자는 "정부조직법에 의해 대통령령으로 만드는 방안을 정부에서 고민하고 있다"며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국정 인수위원회 설치등에 관한 대통령령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령에 의한 인수위에서 정부조직·기능 및 예산현황 파악, 새 정부의 정책기조 설정 준비 등의 작업은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대통령령으로 인수위를 구성하더라도 현행 법상으로는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무위원을 추천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새로운 총리를 빨리 임명해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황 권한대행이 새 정부 국무위원을 제청해야 하는 일시적인 신·구정부 동거라는 '난감한' 상황은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적폐청산이 주요 과제중 하나인 새정부가 적폐로 물러난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내각과 함께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