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과 몇명의 관객이 몇 시간에 그친다고 해도 그게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 믿는다. 그게 영화의 매력이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1000만 관객 흥행몰이에 성공한 영화 '택시운전사' 주연 배우 송강호는 지난 1월 한국영화기자협회가 주최한 제8회 올해의 영화상 시상식에서 '밀정'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송강호는 영화 '택시운전사'를 촬영 중이었다.
독일 언론인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가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취재하러 가는 과정에서 택시운전사 김사복씨와 동행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당시 광주의 참혹했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면서 5월 광주가 재조명되고 있다.
영화에서 시민들은 "군인들이 왜 우리에게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수차례 되묻는다.
시위 학생을 뒤쫓아가 둘러싼 뒤 대검으로 찌르고, 학생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식당주인을 구타하는 군인들. 이에 격분해 거리로 뛰쳐나온 광주시민들에게 쏟아진 계엄군의 총탄 세례.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서울 용산의 한 영화관에서 1000만 관객 흥행몰이에 성공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한 뒤 "많은 이들이 광주에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부산의 민주화운동이란 것도 광주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었고 결국 87년 6월 항쟁의 큰 기폭제가 됐다"며 "아직 광주의 진실이 다 규명되지 못했고 이것은 우리에게 남은 과제다. 이 영화가 그 과제를 푸는 데 큰 힘을 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에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사태는 '폭동'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적었고, 북한 특수군의 5·18 개입 정황까지 주장해 논란을 자초했다.
1980년 5·18 당시 군 헬기가 전일빌딩 주변을 비행하고 있다.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전일빌딩 상공에서 계엄군 헬기가 시민군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한 것에 대해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고, 자신을 "광주사태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를 지향해 제작된 영화 '택시운전사'가 1000만 관객의 '국민 영화' 반열에 오르게 된 데에는 전 전 대통령의 이런 후안무치한 인식과 주장도 톡톡히 역할을 했다.
37년 전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다시 환기시키면서 전두환을 '반란 수괴'로 한 신군부의 만행을 거듭 부각시키는 부메랑이 된 셈이다.
미국 DIA 2급 비밀문서 일부. 5.18 당시 공수부대의 가혹한 진압은 전두환 등 군부 수뇌부의 베트남전 참전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장규석 워싱턴 특파원/ 팀 셔록 기자)
특히 '광주 작전을 지휘했던 전두환·노태우·정호영 등이 잔인한 진압에 나선 것은 모두 베트남전에서 실전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라는 미국 국방정보국(DIA)의 2급 비밀문서가 최근 발견된 것도 전 전 대통령의 역사왜곡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21일자 [단독]'[美DIA 비밀문서] "그들에게 광주시민은 베트콩이었다"')광주의 실상을 본국에 보고한 미군 비밀문서에는 '(5·18 당시) 한국군 수뇌부들은 점령군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마치 광주시민을 외국인처럼 다뤘다. 광주는 한국의 '미라이'(MY LAI,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양민 300여명을 사살한 마을)'라는 표현도 들어 있었다.
이런 가운데 JTBC는 1980년 5월 21일쯤 수원 제10전투비행단 101대대 소속 조종사가 F-5E/F 전투기에 MK-82 500파운드 폭탄 두 발을 장착하고 출격대기 명령을 받았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공군 전투기가 출격대기 명령을 받은 시점은 전일빌딩 앞에서 계엄군 헬기의 기총사격이 목격된 시점과 일치한다.
북한 전투기들과의 공중전(戰)에 대비한 공대공 미사일이 아니라 특정 지역을 폭격하는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했던 만큼, 신군부가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해 정권 보위의 근거로 활용했다는 기존 주장에도 더욱 힘이 실릴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공군전투기가 출격대기한 것을 특별조사하라"고 지시하면서, 발포명령권자를 비롯해 그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실체적 진실 규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80년 광주의 참혹한 현실을 접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들도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며 신군부의 잔인했던 정권 찬탈 과정에 몸서리를 치며 진실규명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과거 사건을 생생하게 재조명한 영화 '택시운전사'의 작은 날개짓이 그간 재조사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감춰졌던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