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삼성전자)
인공지능(AI) 비서 '빅스비'와 '구글 어시스턴트'가 있다.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
삼성전자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삼성 개발자 컨퍼런스 2017(SDC 2017)에서 한층 진화된 인공지능(AI) 가상비서 '빅스비 2.0'과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SDK)를 발표했다.
빅스비 2.0의 가장 큰 변화는 아마존 알렉사와 구글 어시스턴트처럼 음성인식 기능이 대폭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기존 빅스비 1.0은 지난 3월 갤럭시S8과 함께 출시됐지만 잦은 인식오류와 영어 등 외국어 버전이 지원되지 않아 미국 등 해외 사용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7월 중순에서야 영어 버전이 출시됐지만 아마존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 애플 시리,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 등에 견주어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미국 IT매체 엔가젯은 "구글 어시스턴트 음성인식이 빅스비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고 지적했고, 더 버지는 "빅스비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할 것이라고 믿지 못하겠다. 그냥 예전처럼 화면을 두드리고 문지를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실제 구글 어시스턴트는 구글지도, 구글포토, 지메일, 유튜브, 일정, 구글검색은 물론 오피스 앱을 활용해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 반해 빅스비가 아직 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에 내놓은 빅스비 2.0은 지난해 말 삼성인 인수한 음성인식 기술 스타트업 비브랩스(Viv Labs)의 기술을 통합시킨 것이 특징이다. 아직 이론적이지만 스마트 하드웨어에서 강력한 AI 도구로 자리잡고 있는 구글 어시스턴트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빅스비 개발을 진두지휘 해왔던 이인종 무선사업부 CTO(최고기술책임자·부사장)는 이날 빅스비 2.0 시연을 통해 이를 뒷받침했다.
이 부사장이 "하이 빅스비, 내 딸의 최근 사진 좀 찾아줘"라고 말하자 빅스비는 이라크 파병 미군으로 근무 중인 이 부사장의 딸을 찾아냈다. 이 부사장이 다시 "이 사진을 트위터에 올려줘"라고 말하자 빅스비는 바로 실행 했다.
비브 공동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다그 키틀로스는 "빅스비는 모든 디바이스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서 "딥러닝을 통해 계속 사용자를 학습함으로써 철저히 개인화된 AI 비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 어시스턴트와 별 차이 없는 개인화 된 기능이지만 빅스비가 이전보다 더 개인화 된 지시를 수행하게 됐다는 점은 최근 '메이드 바이 구글(Made by Google)'을 앞세워 스마트 스피커인 구글 홈, 스마트폰 픽셀, AI 무선 이어폰 픽셀 버드, VR 데이드림, 구글 와이파이, 크롬캐스트 울트라 등을 내놓으며 지능형 하드웨어 시장에 진출한 구글과 묘한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빅스비의 비전은 개인화, 개방화, 생태계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구글이 웨어러블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AI 플랫폼을 통합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 삼성은 스마트폰과 스마트TV, 냉장고 등 수천여개의 가전제품 라인으로 플랫폼을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지금은 여러 브랜드 개편으로 희미해졌지만 삼성전자의 대표 슬로건 '스마트씽스(SmartThings)'는 '삼성 커넥트(Samsung Connect)', '아틱(Artik)' 같은 사물인터넷(IoT) 서비스와 함께 '스마트씽스 클라우드'로 통합된다.
기조연설에 나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고동진 사장은 "삼성전자는 모든 카테고리의 제품들을 서로 연결하고 소통하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더욱 혁신적이고 편리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며 "다양한 파트너, 개발자들이 보다 쉽고 빠르고 안전하게 참여해 수십억개의 삼성 제품과 서비스들을 통해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에코시스템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동안 외면을 받아온 빅스비가 사용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느냐다. 당장 내년부터 빅스비가 탑재된 스마트TV를 시작으로 냉장고 등 주요 가전부문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포석이지만 스마트폰만큼 파급력이 클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때문에 스마트폰 세계 1위 점유율을 가진 삼성이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사용자 확대해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삼성 빅스비의 최대 적은 애플이 아니라 '집주인(안드로이드)'으로 바뀌고 있다. 국내 양대 가전 기업인 LG전자가 구글 어시스턴트 제어가 가능 한 홈 IoT 가전을 대거 출시한다는 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업계는 빅스비는 어쩔 수 없이 집주인의 자식인 구글 어시스턴트나 아마존 알렉사와 성능 경쟁을 펼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결국 삼성 스마트폰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구글 어시스턴트의 확산도 커지기 때문에 빅스비가 먼저 사용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빅스비 활성화 사용자수는 200여개국 1천 만명에 그치고 있다.
향후 자동차를 비롯해 다양한 디바이스에 필수로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AI 플랫폼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의 그간 절치부심도 빅스비의 흥행에 달려있는 셈이다. 사성 스마트폰이 안드로이드 기반인 이상 구글의 파급력을 제어할 수 있을까.
구글 관계자는 최근 한국에서 '구글 홈'과 같은 AI 하드웨어 제품 출시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물론 한국에서도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이 90%에 육박하는 만큼 충분히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이러한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잠식을 저지하는 새로운 스마트 플랫폼도 선보였다. 삼성은 '스마트씽스 클라우드'가 내장된 와이파이 동글을 연결해 AI 기기로 만들 수 있는 시제품 '프로젝트 앰비언스'다. 평범한 스피커나 램프 전구에 지름 5㎝ 정도 크기의 원형 동글을 연결하면 빅스비를 통해 음성으로 제어하는 스마트 기기로 변신한다.
시연에서 앰비언스 동글이 연결된 가전에 "하이 빅스비, NBA 최고 선수가 누구야"라고 묻자 AI 기기로 변한 가전제품은 "골든스테이트워리어스에서 활약하는 스테판 커리"라고 말하면서 그의 최근 기록까지 알려줬다.
삼성넥스트(Samsung NEXT) 데이비드 은(David Eun) 사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주최 기술 컨퍼런스인 'D 라이브'에서 "우리는 빅스비를 단일 장치를 위한 음성 게이트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TV, 가전, 자동차를 비롯해 가정 내의 모든 기기를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빅스비가 삼성의 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