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수입차 회사들이 배출가스 인증서류를 조작하거나 부품을 바꿔치기하는 행태가 계속되면서, 소비자 피해와 국민 건강 위협만 커지고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정부의 사후 점검 방식도 이같은 '배째라식 행태'에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명 '디젤게이트'로 불리는 배출가스 조작으로 8만대 넘는 폭스바겐코리아의 수입차 인증이 취소되고 178억원의 과징금을 문 게 불과 일년전이다.
하지만 지난 9일엔 BMW와 벤츠, 포르쉐 등 다른 유명 수입차 회사들도 인증서류 위조나 부품 바꿔치기로 서울세관에 줄줄이 적발됐다.
환경부가 뒤늦게 행정처분에 나섰지만, 이미 30여종 10만대에 육박하는 차량들이 4년간 눈속임으로 당국 규제를 피해 전국을 휘젓고 다닌 것이다.
지난해 11월 환경부 조사때만 해도 문제가 없던 차량들이 이번에 무더기로 적발된 배경은 뭘까.
환경부 관계자는 "서울세관 경우엔 수사권이 있다 보니 압수수색에 들어갔다"며 "환경부에 제출한 인증서류뿐 아니라 독일 본사의 원본서류까지 확보해 비교했기 때문에 우리가 거르지 못한 부분까지 잡아낼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현재 수입차를 인증할 때는 직접 차량을 검사하는 게 아니라, 수입회사들이 제출한 인증 서류만 심사하는 '자가인증방식'이 적용된다. 나중에 결함확인검사에서 걸러내면 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이같은 방식을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와는 '토양'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후검사에 투입되는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사후 점검기관은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 등 사실상 두 곳이다.
지난해초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을 담당하던 한 연구원이 "교통환경연구소가 폭스바겐의 대변인으로 전락하지 않았나 자괴감까지 든다"며 "2010년 이후 5년간 신규 연구사 채용 숫자 0명이 냉혹한 현주소"라고 내부 이메일을 보낸 '사건'은 국내 인증 시스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녹색교통운동 송상석 사무처장은 "판매차종이 워낙 많다보니 인증기관에서 모두 사전 인증한 뒤 출시하는 건 시간적, 비용적으로 현실성이 낮다"며 "국내에도 전문가나 기관이 많으므로 이를 활용한 감시센터 등을 운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가뜩이나 열악한 인증 환경의 또다른 장애물은 '정보의 불균형성'이다. 자동차 수입회사들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배출가스 관련 소프트웨어나 부품 변경 등 핵심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사후검사에서 제대로 걸러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폭스바겐 사태 역시 정부 당국의 점검과 조사가 아닌, 내부고발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송 사무처장은 "자동차 회사들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못 잡아낼 거다, 국가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심지어 국내 제작사들은 오히려 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행정처분에 대해서도 BMW나 벤츠는 "행정적 실수일 뿐, 부품 변경에 고의성은 없었다"며 "깊은 유감"이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정부가 '고의성'을 걸러내기 힘들 거란 판단이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낳는 대목이다.
벤츠의 경우 "폭발 위험이 발견된 '다카타 에어백' 탑재 차량을 리콜하라"는 국토교통부의 지난해 권고도 일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무시하고 있다.
"한국에선 결함이 보고된 적 없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지난달부터 중국에선 해당 차량들에 대해 대규모 리콜을 개시했다. "한국 소비자만 봉으로 여긴다"는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까닭이다.
따라서 사후점검과 판매금지 등 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건 물론, 한번 걸리면 영업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정도의 징벌적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앞서 환경부는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인증서류 위조시 매출액의 3%에 차종별 10억원이던 과징금 상한액을 지난해 8월부터 100억원으로 상향했다. 또 다음달 28일부터는 매출액의 최대 5%, 상한액은 차종당 최대 500억원으로 한층 높아진다.
하지만 이번에 시험성적서 위조로 적발된 BMW의 28개 차종엔 579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예정이다. 현재 상한액이 100억원이라지만 실제 차종별 부과될 평균 과징금은 5분의1인 20억원 수준인 셈이다. 연말 적용될 새 기준으로 따지면 상한액의 2%에 불과하다.
송 처장은 "지난 2014년 산타페 연비조작 사태시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 집단소송에 몰리자 4200억원 보상에 합의한 적이 있다"며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선 미국이나 유럽처럼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