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사진=자료사진)
22일 국회에서 진행된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야권에서도 "큰 흠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흠집내기 식 공격이 아닌 정책 질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후보자는 우선 헌재소장 임기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해석에 따라 재판관의 남은 임기를 헌재소장 임기로 해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했다. 현행 헌재법 상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6년이지만, 재판관 중에서 임명되는 헌재소장의 임기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어 이 후보자처럼 재판관 중에서 소장으로 임명되는 경우 새롭게 6년이 시작되는지 잔여 임기를 따르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 후보자는 "해석에 의해 잔여임기를 한다는 게 다수 견해"라면서도 "다만 임기가 논란이 되는 헌재소장 후보자는 저를 마지막으로 더는 없기를 입법자인 여러분께 강력히 희망한다"며 헌재소장 임기 문제를 입법으로 해결해줄 것을 국회에 촉구했다.
잔여임기를 따르면 이 후보자의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이 후보자는 "제가 임기가 10개월도 안 남았지만, 단 하루를 하더라도 6년을 근무하는 것처럼 사건 처리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야권에서는 안보와 관련한 질의에 집중했다. 자유한국당 송희경 의원은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하는지 등을 물었고 이 후보자는 "그렇게(주적으로) 보고있다"면서도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는 "독소조항도 있고 오·남용된 적도 많다. 남용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같은 당 권석창 의원은 질의가 시작되자 "후보자의 재산증식 과정이나 카드결제 내역 등을 살펴봤지만 큰 흠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생활보다는 후보자의 소신과 철학, 헌법준수 의지를 중심으로 질의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낙태죄, 양심적 병역 거부 등 사회적 논란이 되는 이슈와 관련해서는 이 후보자는 적극적으로 소신을 드러냈다.
낙태죄와 관련, 이 후보자는 "일반적으로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충돌한다고 보지만 꼭 두 가치가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임신 후 일정 기간 동안 낙태를 허용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 처벌에 대해서는 "인간의 자유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처벌을 감수하는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공무원의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이 후보자는 "자기 근무 시간이 아닌 주말 등에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새로운 판단도 가능하다"며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후보자는 특히 헌법 개정 시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넣는 것에 대해 "충분히 가능하다"는 소신을 보이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과거 '5·16 혁명'이 헌법 전문에 들어가 있다가 쿠데타라는 결론이 나면서 전문에서 삭제됐듯이, 전문에 '5·18'을 넣는 것이 사회적 합의가 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2012년 8월 이미 한 차례 헌법재판관에 임명될 당시 인사청문회를 거친 이 후보자는 "과거에 비해 질문 내용이 어떤 것 같냐"는 민주당 한정애 의원의 질의에 "질문 내용이 알찬 것 같다"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한편 이 후보자는 본격적인 위원 질의가 시작되기 전 모두발언을 통해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를 들려드리겠다"며 김종삼 시인의 시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를 직접 읊었다.
해당 시는 시인이 "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순하고 명랑하고 슬기로운 사람들이 고귀한 인류이자 시인"이라고 노래하는 내용으로, 이 후보자는 "우리 국민들이 시인과 다름없이 살아간다. 헌법이라는 우산 아래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으며 비합리적인 차별을 받지 않으실 수 있도록 헌법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에서 이 시를 말씀드렸다"며 시를 고른 이유를 설명했다.
민주당 소속 진영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시를 감상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고 같은 당 강병원 의원도 "인사말이 정말 감명 깊고 가슴을 울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