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 만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사진=자유한국당 제공)
자유한국당 홍준표(63)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알현 외교' 공세를 폈다가 호되게 되치기를 당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중국 국빈방문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굴욕을 겪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자신이야말로 아베 총리로부터 동석(同席)을 거부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여간 낯 뜨거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줄기차게 예우를 따지는 홍 대표의 행보는 유별난 데가 있다. 문 대통령이 정의당까지 포함해 5개 정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하자 영수회담 형식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당선 인사차 방문하려 했을 땐 특별한 이유도 없이 묵살해버렸다.
홍 대표의 의도는 문 대통령과의 '1 대 1', 혹은 한국당과 민주당의 양자구도를 연출하려는 것이다. 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은 각각 여야의 2~3중대로 규정,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방식이다. 비록 지난 대선에선 실패했지만, 차기에선 '51 대 49' 싸움을 복원해 집권하겠다는 야심이다.
지난 일본 방문도 그런 야심의 발로였다. 문 대통령이 중국을 가니, 나는 반대로 일본으로 향한다는 식의 기획이었다. 홍 대표는 방일(訪日) 일정 내내 한미일 자유주의 핵(核)동맹과 북중러 사회주의 동맹을 대비시켰다.
지난 1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만나서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부가 북한 핵 대처를 미흡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우리가 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해법을 못 찾고 중국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대신 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홍 대표는 일본으로부터 현 정부를 대체할 만한 대표성을 인정받았을까. 스틸 컷으로 공개된 회동 장면을 보면 그렇지 않다. 홍 대표의 좌측에 앉은 아베 총리는 높이가 약 10cm 더 높고, 색채와 문양 면에서 급이 높은 의자에 앉아 있다. 악수 장면에서는 홍 대표가 거의 넙죽 절을 하고 있다.
외교통으로 평가되는 한 전직 의원은 이 장면에 대해 "아베가 상석(上席)에 앉아 지위와 격을 구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토록 간절히 예우를 원한 홍 대표에게 아베 총리는 '너는 내 아랫사람'이란 외교적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이야기 나누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위), 지난 6월 아베 총리와 회동 하는 정세균 국회의장 (사진=자료사진)
야당 대표와 일국의 수상(총리)이란 관계를 감안할 때 이 정도의 의전 격식은 필요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정세균 국회의장은 아베 총리와의 회동 당시 똑같은 의자에 앉았다.
정 의장과 동행했던 한일의원연맹 소속 의원들에 따르면 당시 주일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배석할 때 의자가 다르다"는 설명을 사전에 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일본통인 바른정당 지상욱 의원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회의장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강하게 요구하고 나서 동석(同席)을 받아냈다.
국회의장의 국내 의전서열은 2위, 야당 대표는 7위다. 야당 대표 역시 결코 지위가 낮지 않다. 전근대적 왕조 시대도 아닌데 앉는 의자를 가지고 차별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우습지만, 그것을 별 수 없이 받아들인 처사도 안타깝다. 더구나 홍 대표가 문 대통령에 대해 '시진핑 주석을 황제 조공하듯 알현했다'고 비난했던 점을 감안하면 스스로의 격을 더 높였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홍 대표를 수행한 일행은 엉뚱한 대목에서 특전(特典)을 요구했다. 장제원 대변인은 "일본 방문 전 사전에 지문 채취를 한다면 방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일본이 예우 차원에서 수용했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이는 상대방의 자발적 예우라기보다 사실상 특별대우를 강요한 것과 같다. '외교‧공용'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면 면제받았을 지문 날인을 거부한 것은 현지법의 취지와 맞지 않을뿐더러 홍 대표의 사적인 만족을 위한 행동에 불과하다.
원외 당 대표로서 현직 국회의원도 아니고 전직 도지사인 홍 대표는 일반 여권 소지자다. 비록 논란의 여지가 있는 외국의 법이라고 하나 일반 국민들은 따르고 있는 현지법을 위반한 셈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 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위), 바른정당 지상욱 의원 (사진=자료사진)
아베 총리에게 고개 숙인 장면이 친일(親日)로 해석되자, 홍 대표는 SNS(페이스북)에 올린 반박 글을 통해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일본에 입국한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그러자 또 '의자 굴욕' 문제가 불거졌다. 지문날인에선 특혜를 요구한 반면, 의자와 관련된 의전에선 당당하게 예우를 요구하지 못했다.
홍 대표로선 예우 문제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했다가 되레 하대를 받고 왔음이 만천하에 드러나 결국 손해를 본 결과다.
여권과의 양자구도에 대한 한국당의 집착도 비슷하게 귀결될 수 있다. 대안을 내놓고 따지는 방식이 아니라, 도식에 따라 반대를 위한 반대만 반복한다면 국민적 공감 대신 반감만 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