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포스터(왼쪽)와 만화 'H2' 표지(사진=tvN·대원 제공)
이번에도 자유롭지 못했다. 18일 종영한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도 대중들은 일본의 유명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을 떠올린 까닭이다.
이 드라마를 비롯해 전작 '응답하라' 시리즈까지, 연출자 신원호 PD에게는 아다치 미츠루 작품과의 연관성에 관한 꼬리표가 매번 따라붙는다.
"아다치 작품을 참고한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 속 첫사랑의 감정이 아다치 작품의 정서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앞서 '응답하라 1994' 등이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 '터치' 'H2' 등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일 당시, 신원호 PD가 내놓은 다소 애매하고 모순된 해명이다.
만화·영화 등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를 넘나드는 글쓰기로 주목받는 문화평론가 김봉석은 "신 PD 작품에 나오는 장면이나 설정 등은 아다치 미츠루 작품을 조금씩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것을 표절이라고 볼 수는 없다. 표절의 개념과 경계는 몹시 애매하기 때문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처럼 득정 작품의 장면이나 설정을 의도적으로 가져와 잘 만들어내면 걸작으로 불린다. 반대로 해당 작품이 엉망이면 욕먹기 마련이다."
앞서 아다치 미츠루 작품에 관한 글을 내놓기도 한 김봉석은, 이 일본 작가의 작품에 녹아 있는 특유의 감성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어려서부터 친했던 주인공들, 서로 좋아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거리, 소중한 사람의 상실과 같은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정서를 소품·상황으로 짐작할 수 있도록 묘사한다. 신원호 PD 작품에서도 시청자들은 이러한 정서를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본에서 1981년 아다치 미치루의 '터치'가 나왔을 때 '열혈을 끝장낸 만화' '소녀들이 보는 소년 만화'라는 평가가 나왔다"며 "그 시점이 일본의 경제 호황이 절정으로 치닫던 때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1970년대까지 일본에서는 열혈, 그러니까 뭔가를 이뤄내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우정을 매우 중요시하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한 경향이 문화 콘텐츠에서도 드러났다. 그런데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는 '왜 그렇게 살아야 해?'라는, 과거와 달라진 삶의 태도를 보여줬다."
"기존 사회에서 강권하던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을 거부하고, 자기 영역을 중요시하면서 그 안에서 타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세밀하게 보여줬다"는 것이다.
◇ "창작자들, '이 작품 좋아서 인용했다' 인정하는 게 더 나은 태도"
(사진=tvN 제공)
김봉석은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에 아다치 미츠루의 'H2'를 통해 일본과 유사한 정서적 공감대가 마련됐다"며 분석을 이어갔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아다치 미츠루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경험한 이들이 현재 30, 40대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초반부터 개인주의 성향이 강화됐는데, 미츠루나 하루키의 작품을 통해 '이런 것이구나'라고 확인하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그는 "신원호 PD 작품에서 시청자들이 아다치 미츠루의 정서를 읽고 있는 데는 일종의 '추억'이 작용하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아다치 미츠루가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그 작품의 메시지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그야말로 좋았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 돼 버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신원호 PD의 작품이 그러한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좋았던 과거를 추억하게 만드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처럼 절대 악인은 없으며 어느 곳에서든 행복할 수 있다는 판타지가 아다치 미츠루를 읽으면 자란 지금 30·40대의 공감과 지지를 얻는 셈이다."
김봉석은 "대중들이 신원호 PD 작품과 아다치 미츠루 작품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의도적인 인용은 현재 대중문화의 경향이라고 본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이 작품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창작에 대한 강박이 있다"고 지적했다.
"어떤 감독은 '외국의 어떤 작품을 재밌게 읽었다'고 해놓고는, 나중에 영화 속에서 그 장면이 나오니까 '그 작품은 읽은 적도 없다'고 이야기하더라. 작가나 감독들이 '이 작품을 인상 깊게 봐서 인용했다'고 자유롭게 인정하는 것이 더 나은 태도라고 본다."
그는 "다른 작품을 인용하는 것이 이상한 약점이나 작품의 질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는 인식을 이제는 버렸으면 한다"며 "인용을 인정하는 것은 책 맨 뒤에 붙는 '참고문헌'처럼 대중들이 지식과 정보를 더욱 확장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