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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남긴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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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남긴 '명언'

     

    영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박사가 타계했다. 그의 나이 76세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혔던 그는 14일 오전(현지시간) 캠브리지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을 다했다. 호킹 박사의 세 자녀 루시, 로버트, 팀은 성명서를 통해 슬픔을 전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오늘 돌아가신 것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아버지는 위대한 과학자였고 그의 업적과 유산이 오랫동안 지속될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용기와 인내심은 명석함과 유머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언젠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니었다면, 우주도 별 의미가 없었을 것(It would not be much of a universe if it wasn't home to the people you love)'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영원히 그리워 할 것입니다."

    호킹 박사는 우주의 가장 작은 부분부터 가장 큰 부분까지 모든 영역에서 연구를 해왔다. 시간과 공간에 걸친 인간의 이해의 한계를 시험하고 양자 이론의 하위 분자 세계까지 들여다 봤다.

    오늘날의 월드와이드웹(WWW)을 만든 팀 버너스 리 경은 트위터를 통해 "(스티븐 호킹 박사의 타계로) 우리는 거대한 사고와 멋진 정신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호킹 박사는 1988년 누적판매 1천만부를 기록하며 최고의 저서로 평가 받는 대중 과학서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로 두각을 나타냈다. 또 여러 해에 걸쳐 코믹 애니메이션 '심슨네 가족들(The Simpsons)'과 미국 드라마 '빅뱅 이론(The Big Bang Theory)'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과학의 대중화에도 힘썼다.

    그의 연구는 우주의 기원부터 시간 여행의 가능성, 우주 여행에 필요한 개념, 수많은 블랙홀의 신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이론 중 하나는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Black Holes Ain't So Black)" 였다.

    블랙홀은 강한 중력으로 인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여 검은 구멍(Black Holes)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는 검은색이 아니라 양자 효과로 인해 방출되는 흑체 분광 열복사선으로 블랙홀이 빛을 내며 점차 에너지, 즉 질량을 잃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 블랙홀의 원래 에너지는 모두 빛으로 바뀌어 블랙홀이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과학자들은 호킹의 이런 주장을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제 목표는 간단합니다. 우주에 대한 완벽한 이해, 그리고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저 펜로스(Roger Penrose)와 함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공간과 시간이 빅뱅의 시작과 블랙홀의 끝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양자 물리학을 조화시키고 '만물 이론(Theory of Everything)'을 만들어 낼 방법을 찾기 위해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

    호킹 박사는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흥분시켰던 주제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시간의 역사'를 썼다고 밝혔다. 그는 "저의 원래 목표는 공항 서점에서 판매할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이었다"며 "이해하기 쉽도록 확실하게 하기 위해 간호사들에게 그 책을 써서 보냈다. 그들은 내용의 대부분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어려운 우주와 물리학에 대한 이해를 대중에게 얼마나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는지 이해 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42년 1월 영국 옥스퍼드에서 출생한 스티븐 호킹은 케임브리지로 이사하기 전까지 옥스퍼드 대학에 다녔다. 1979년부터 2009년까지 과거 아이작 뉴턴이 맡기도 했던 케임브리지대 석자 교수를 역임했다. 은퇴한 그는 케임브리지대 응용수학 및 이론 물리학과의 연구 책임자로 지냈다.

    21살의 나이에 이른바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를 진단을 받았다. ALS는 희귀 난치 질환으로 평생을 휠체어에서 보내야 했다. 상태가 악화되면서 음성합성장치를 이용해 말을 하고 눈썹을 움직여 의사 소통을 해야 했다.

    그는 두 번 결혼했다. 1990년 25년간 함께 살았던 아내 제인과 이혼하고 자신을 간호했던 간호사 중 한 명이었던 엘라인 에머슨과 살다 1995년 결혼한 뒤 2006년 다시 이혼했다.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었다.

    호킹 교수는 회고록를 통해 자신이 희귀질환을 받은 이후에도 수 십년 동안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정말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나는 나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차분하게 내 삶에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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