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의 비핵화와 항구적 체제안전 보장을 맞바꾸는 전례 없는 '빅딜' 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행동 대 행동' 등 이미 여러 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단계적 접근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북미정상회담의 성과를 견인하기 위해 일단 남북한 차원에서라도 북한의 체제 안전을 담보해줄 수 있도록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남북 평화체제 제도화'와 '남북기본협정 체결'도 정상회담 의제로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 북한, '되돌릴 수 없는' 체제안전 보장 요구에 대비해야미국은 일관되게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VID) 수준의 핵폐기를 하라고 북한에 요구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 중앙정보국 국장.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강경파인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이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총괄하고 나선 만큼 이 원칙은 더 강경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을 무력으로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담보해야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6.25 전쟁 종전을 선언하면서 정전협정 체제를 끝낸 뒤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네바 합의나 9.19 공동성명 등 기존의 북핵 문제 해법은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항상 핵폐기의 마지막 단계에 두었는데 북한에게는 더 이상 매력적인 카드가 되지 못한다.
미국이 합의 사항을 어겼다며 협정을 파기해온 북한 입장에서는 핵 폐기 후에 과연 약속대로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할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목적은 체제 안정인데 이를 예전처럼 후순위로 돌린다는 것은 김정은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북한은 핵폐기와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동시에 시작하자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고, 한국과 미국도 '일괄타결'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비핵화의 입구'와 '평화협정 체결 입구'로 동시에 들어가더라도 북한이 CVID에 맞서 CVIG,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체제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 이를 담보해줄 카드가 더 필요하다는 점이다.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미국이 핵폐기의 대가로 북한의 체제 보장을 위해 줄 수 있는 카드는 북미간 국교 수립과 의회 비준으로 지속성을 갖는 평화협정 체결이 될 것"이라며 "그러나 북한이 이것만으로 안심하고 핵폐기를 완전히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입장에서 되돌릴 수 없는 체제 보장 방안이 담보되지 않으면 빅딜이 성사되기 어렵고 이럴 경우 어렵게 마련된 북미정상회담이 삐걱거릴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사진=자료사진)
◇ 북한 안심시킬 '추가 카드' 남북정상회담에서 제시될까 전문가들은 이런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정상회담의 역할이 더 막중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동국대 북한학과 김용현 교수는 "어떻게 보면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핵심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라며 "비핵화와 종전선언, 평화체제 구축 등 핵심 의제와 관련해 워밍업을 하면서 사전 조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믿지 못하는 북한을 더 안심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중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공약이나 베를린 선언에서 언급한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제도로 보장되는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방안이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평화체제 제도화 & 남북기본협정 체결, 정상회담 의제 가능성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와 토론회에서 '한반도 평화공존의 제도화' 방안을 언급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했던 '남북기본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남북연합 등 '남북한 평화공존의 제도화'가 모색된다면 북한에게는 확실한 안전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인 조성렬 위원은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인데 군사적 위협은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체제 안전 보장에는 몇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해답을 내놔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평화체제와 북미 수교에 더해 '평화공존의 제도적 보장' 등이 따를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조 위원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에 남북조절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일종의 '남북연합'에 대한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며 "이번에도 이런 합의가 이뤄진다면 (제도적 보장 방안)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남북연합 개념이 전혀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00년 6.15 공동선언문에서 남북 두 정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특히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 2016년 제7차 노동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6.15 공동선언 합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서로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연방제 실현을 통한 평화보장'을 강조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체제 제도화' 구상과 김정은 위원장의 '연방제 실현을 통한 평화보장'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낸다면 북미정상회담의 성과를 더 확실하게 견인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국가 2체제나 남북연합 등이 추진될 경우 남북한은 대외적으로는 하나의 국가로 인정되면 미국에 의한 공격 등 북한의 우려가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 체제의 제도화'나 '남북연합'은 미국과 중국 등 다자가 개입된 평화협정 체결과는 달리 남북 두 당사자 간에도 협의할 수 있는 체제안전 보장 장치라는 장점도 있다.
홍민 실장은 "핵을 포기하더라도 안보 우려가 없다는 점을 설득하면서 북한이 안심할 수 있도록 남북 차원의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남북정상회담의 핵심이라고 본다"며 "평화공존체제를 제도화 하기위해 남북연합 기구를 상설화하고 이를 위한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한다는 원칙적인 합의가 나오면 북한 입장에서도 안전장치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15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총괄 간사로 하는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구성을 완료하고 의제 개발과 전략 수립에 본격 착수했다.
북한의 체제 붕괴 우려를 불식시켜주면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성과를 견인해낼 수 있는 남북 차원의 제도적 보장 장치 마련이 추진될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