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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학살, 사과는 당사자들에게"…文 순방길 주목

인권/복지

    "베트남학살, 사과는 당사자들에게"…文 순방길 주목

    "위안부 합의에 강조하던 '피해자 중심주의' 외면 말라"

    22일 베트남 순방길에 오르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등 전쟁범죄에 대한 공식 사과의 입장을 낼지 주목된다.

    이번에도 '마음의 빚'을 넘어서는 표현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간 양국의 외면에 고통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피해자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위안부 합의땐 피해자가 중요하다더니

    1968년 1월 베트남 중부 꽝남성 하미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로 가족들을 잃고, 수류탄에 다친 오른발을 잘라내야 했던 쯔엉티투(80) 씨(자료사진=김광일 기자)

     

    청와대 관계자는 20일 "베트남정부에서는 그런(사과)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며 "외교는 상대방의 인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베트남정부는 가해국의 사과가 국민들을 자극해 내부갈등이 생길 경우 체제안정에 해가 될 것을 우려해 조심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과는 당국이 아니라 학살이 자행된 지 50년이 지난 현재까지 상처를 오롯이 감당하고 있는 피해 당사자를 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TF 소속 임재성 변호사는 "피해자에게 해야 할 사과를 정부에 하려고 하니 이런 상황이 된 것"이라며 "2015년 위안부합의는 피해자가 빠졌다고 지적하면서 베트남 피해자들의 요구에는 답하지 않는 건 모순"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과거사 문제는 국가 간 해결해야 할 외교 쟁점이기도 하지만 피해자가 있는 인권문제기도 하다"며 "진실을 어떻게 드러내고 피해자들을 어떻게 마주해야할 지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학살 피해자 "한국정부는 뭘 하느냐"

    1969년 2월 한국군의 총탄에 꽝남성 주이하이사에 살던 일가족 9명을 한꺼번에 잃었던 당민코아(68) 씨(오른쪽)(사진=한베평화재단 제공)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해 대규모학살과 성폭행 등으로 피해를 봤던 당사자나 유가족 상당수는 한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원하고 있다.

    지난 10일 학살 50주기 위령제 참석차 베트남 현지를 찾은 한국인들에게 학살 유가족 당민코아(68) 씨는 "한국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당신네들이 오느냐"며 격노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만행을 저질러놓고 언제까지 이대로 있을 것이냐. 언제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책임질 노력을 할 것이냐"며 울분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자리에 있던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가 무릎을 꿇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사과한다. 국가도 머지않은 시기에 할 것'이라고 했더니 그는 '개인에게 화낸 것이 아니다'라며 눈물을 보이셨다"고 기억했다.

    김 의원은 이어 "현실적으로 베트남정부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사과하고 책임지는 것은 피해자와 관련한 일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양심과 윤리의 문제라 앞으로도 진실에 직면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베평화재단 등에 따르면 당민코아 씨는 1969년 2월 별안간 들이닥친 한국군의 총탄에 꽝남성 주이하이사에 살던 일가족 9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전쟁 기간 이 마을에서는 모두 149명의 민간인이 한국군에 학살된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계 혼혈 '라이따이한' 응우옌 티 낌(48·왼쪽) 씨와 그의 딸(오른쪽) (사진=김광일 기자)

     

    한국군 성폭행 피해자 2세(라이따이한) 응우옌 티 낌(48) 씨 역시 지난해 CBS노컷뉴스 취재진을 만나 "전쟁통에 버려졌지만 내 안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언젠가 내가 라이따이한이라는 걸, 반은 한국인이라는 걸 자랑스러워 하는 삶을 살고 싶다"며 오열했다.

    ◇ '공식사죄' 요구 봇물…이번에는?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최근 정치권과 종교계, 시민사회에서는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와 관련한 여러 건의 청원이 올라왔고 이 가운데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그때의 일을 정확히 다룰 필요가 있다"는 청원은 3주 만에 6천 명이 동의했다.

    이부영 전 국회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연히 해야 할 일도 적시에 적당한 자리에서 해야 그 뜻이 널리 크게 전달될 수 있다"며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의 나치 히틀러 학살 피해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 사례를 따르시길 요청한다"고 적었다.

    (사진=이부영 전 의원 페이스북 캡처)

     

    강우일 주교(천주교 제주교구장)는 20일 한베평화재단 성명을 통해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학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이 역사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의 분수령이 되길 빌며, 그 첫발로 공식적이며 공개적인 사과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요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때부터 지난해 한-베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마음의 빚'에 멈춰섰던 우리 정부의 입장이, 이번에는 어느 수준까지 이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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