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이틀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 학교 운동장이 텅 빈 모습을 보이고 있다.이한형 사진기자
연일 한반도에 불어닥치고 있는 사상 최대 수준의 미세먼지에 대해 교육당국이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자 학부모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일부에선 등교거부까지 선언하고 나서면서 미세먼지 공포증, 이른바 '더스트 포비아(dust phobia·먼지와 공포증의 합성어)'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 "출석일수보다 건강이 중요하잖아요"
최근 극심한 미세먼지가 계속되자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황모(43) 씨는 지난 26일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환기시설도 없으면서 "창문을 열지 않는다"는 정도의 대책만 내놓는 학교에 아이를 맡기기 불안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극심한 미세먼지에 요즘 들어 부쩍 비염이 심해지던 참이었다.
황 씨는 "학교에선 미세먼지가 결석사유로 인정되지 않겠지만, 출석일수 채우자고 아이를 무방비로 보낼 수 없었다. 수업시간에 마스크를 쓰게 할 수도 없지 않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또 다른 학부모(38)도 초등학교 1학년 된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부담스럽긴 했지만 비염과 기관지염, 폐렴까지 앓는 아이를 요즘 같은 때에 차마 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 그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 천식이 재발되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무서울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마찬가지로 등교거부에 나선 초등생 부모 유모(32) 씨 역시 "학교에서 환경을 잘 만들어주면 결석할 일 없는데 그런 대책 하나 없이 결석도 안된다 하는 건 불합리하다"며 성토했다.
◇ 청와대 청원에 인터넷 카페까지 '휴교령 촉구' 봇물
이처럼 아이를 등교시키지 않거나 휴교령을 요구하는 부모들이 최근 속출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는 휴교령을 촉구하는 청원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이 가운데는 "미세먼지에 아파트 건너편 동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런 날은 초등학교만이라도 휴교령을 내려달라"는 청원도 눈에 띈다.
서울 송파구나 서초구 학부모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의 사진을 공유하며 "이래서 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걱정 섞인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 당국은 언제까지 뒷짐지나
사정이 이런데도 교육당국은 가장 높은 수준의 미세먼지 경보(PM 2.5 시간당 평균농도가 180㎍/㎥ 이상)가 2시간 이상 내려질 때만 휴교령을 '권고'할 수 있다면서 이밖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권고조처는 학교장 재량에 맡겨져 있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에 취약 계층인 아이들과 노약자를 위해 좀 더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노동환경연구소 김원 박사는 "휴교령 같은 조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며 "야외활동 금지부터 단계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박성규 겸임교수는 "학교 같은 경우 실내 공기가 더 나쁠 수 있어 공기청정기 등 적극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미세먼지가 나쁜 날 학생들이 먼저 휴교하자고 말하곤 한다"고 했다.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미세먼지가 심한 날 초등학교 휴교령을 내리고, 대형 공기청정기를 설치하는 방안 등 적극적으로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