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검찰총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에서 검찰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 이른바 '검찰 패싱' 상황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당사자 격인 검찰이 논의 과정에서 배제된 데 따른 사실상 불만을 토로한 셈이다.
문 총장은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저희(검찰)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안이 나온 것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의견 제시) 기회가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상기 법무부장관과 수사권 조정 문제를 논의한 바 있느냐는 질문에 "논의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궁금해서 물어본 적도 있지만, 구체적인 경과나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수사권 조정 논의 방식이 공개되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기관과 협의를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문 총장은 수사권 조정 문제는 '실효적인 자치경찰제'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일선 경찰서 단위 사건을 모두 자치경찰이 담당하는 실효적 자치경찰제가 도입되면 자연스럽게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다"며 "일선 경찰서에서 수사하는 98.2%의 민생범죄는 주민의 '민주통제' 아래 자치경찰의 자율과 책임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가경찰에 대한 검찰의 사법통제와 영장청구권은 꼭 유지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법판단 영역인 수사종결권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문 총장은 "사법, 수사경찰이 구속하는 나라는 민주국가 중에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식민시대에 들어온 제도로 해방 이후 제도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경찰에 구속 권능을 인정해 주고 대신 검사에게 영장심사를 받게 만든 타협적 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검사의 영장심사 제도는 50년 이상 지속돼 온 인권보호 장치이므로 꼭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의 동향 파악 등 정보 수집 활동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문 총장은 "경찰이 동향, 정책 정보라는 이름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동향 정보라는 이름으로 사찰을 하는 것인데 사찰인지 모르는 것도 문제이고 그건 위법한 행위"라고 말했다
다만 경찰이 주장하는 영장청구 이의제기 제도는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문 총장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게 좋을지 검토하고 있고 아직 완성품이 나올 정도는 아니다"라며 "고검에 두는 방안이나 영장심사위원을 별도로 두는 방안 등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에 대해서는 수용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앞으로 국회에서 바람직한 공수처 도입 방안을 마련해 주신다면 국민의 뜻으로 알고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답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수사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유일한 합법적 수단"이라며 "위헌성 시비를 안고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험해 위헌 여지에 대한 우려의 말씀을 드린 것이며 국회에서 결정하면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것이고 반대하는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법조비리수사단' 설치를 밝힌 문 총장은 공수처와 업무 영역이 다름을 강조했다. 공수처 도입을 반대하기 위한 선행 조치가 아니냐는 의혹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공수처 수사 대상은 주로 판·검사하고 고위공직자를 주로 하고 법조비리는 법조직역,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카테고리가 상당히 다르고 수사항목도 굉장히 디테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31일 1차 구속기간이 만료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 전 대통령 조사를 계속 시도하고 있고 좀 더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해 구속기간 연장 가능성을 내비쳤다.
오는 6월 치르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맞아 검찰이 업무 변화를 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선거국면이 시작되면 업무 중심도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는 쪽으로 변해야 하지 않나 싶다"며 "(적폐 수사는) 조용한 상태로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가 끝나면 민생에 더욱 치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문 총장은 현 정부의 수사 불개입 원칙은 "분명히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참여정부 때도 같았다. 최종 결정권자인 제가 수사 관련된 통화를 한 적이 없다"며 "수사권 조정과 제도 개혁과 관련해서만 민정수석과 통화한 적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