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국립현대미술관과 전쟁기념사업회로부터 청사에 걸 그림을 대여받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청사내 예술작품 전시·배치와 환경개선에 상당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끈다.
국방부는 지난달 16일 서울 용산청사 1층 현관 정면에 걸려 있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 '적영'(적의 그림자)을 떼어냈다.
가로 2m, 세로 3m 크기의 이 그림은 베트남 파병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알려진 638 고지전을 담은 작품으로 운보가 1972년 6월 14일부터 7월 4일까지 베트남을 방문한 후 월남전쟁기록화전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당시 국무위원들이 이 그림을 구입해 국방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운보가 친일파로 분류되고 이 그림이 운보가 일제 강점기때 일본 군국주의를 미화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는 '적진육박'과 판박이처럼 흡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오랜 기간 논란을 빚었다.
◇ "국방부 소장 예술작품 적어…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대여 검토 중"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1층 현관에 걸려있던 운보 김기창의 작품 '적영'(적의 그림자) (자료사진)
적영은 1979년 12월 12일 국방부를 습격한 군사쿠데타 세력이 쏜 총탄이 그림 속 국군 병사의 눈을 관통했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국방부는 청사 현관 주변에 대한 환경개선 작업과 예술작품 재배치 방침에 따라 운보 그림을 내렸다고 밝혔으나 운보의 '적영'이 다시 내걸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국방부가 운보의 적영을 대체할 그림을 비롯해 환경 개선을 위한 예술작품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군이 가지고 있는 그림이 3천9백여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며 "실제 휑한 복도를 꾸미기 위해 시장에서 사온 수만원짜리 그림 외에 실제 감정가를 평가하고 작품가치를 논할 만한 그림은 본부에 8점뿐"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에 따라 "정부 공공기관으로서 무상으로 예술작품을 대여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전쟁기록화 등을 갖고 있는 전쟁기념사업회 등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2층에 걸린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도 역시 훼손된 부분이 있어 복원을 위해 교체한다는 방침이다.
◇ 풍찬노숙 논란, 독립투사들 흉상도 눈 비 안맞게
현관 밖에 설치돼 있는 강우규, 박승환, 안중근 의사의 흉상(왼쪽부터) (사진=권혁주 기자)
국방부는 1층 현관 밖에 설치돼 이른바 '풍찬노숙하는 독립투사들'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 안중근, 이봉창, 홍범도, 윤봉길 등 6인의 흉상을 재배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방부 청사에는 현재 의·열사와 역대 유명 장군 등 22명의 흉상이 설치돼 있는데 주로 현관 밖에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의 의·열사, 현관 안쪽에는 이순신과 을지문덕 등 역사 속 옛 장군들, 2층 장관실 주변에는 근·현대 군의 기초를 놓았던 장군들 흉상이 설치돼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현관 밖에 있는 흉상에 대한 논란을 알고 있다"며 " 전체적으로 검토해 뒤섞여 있는 흉상을 인물 테마별로 재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도 청사내 예술작품 재배치와 현관 출입구 환경 개선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청사 1층 브리핑룸 앞의 '꽃과 병사와 포성'. 천경자 화백의 작품으로 감정가액이 13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권혁주 기자)
한편 국방부가 소장하고 있는 예술작품 가운데 가장 고가로 평가받는 것은 고 천경자 화백이 그린 '꽃과 병사와 포성'으로 감정가액이 13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그림 역시 월남전을 테마로 한 작품으로 월남전쟁기록화전에 출품돼 당시 국무위원 등이 구입해 국방부에 기증한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적진육박'과 판박이인 김기창 화백의 '적영'에 대해서는 감정가 3억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미술계 인사는 "운보가 주로 한국화를 그려 서양화 그림은 상당한 희귀성이 있어 부르는게 값"이라며 "논란에도 불구하고 10억원을 호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