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냈다' SK 노수광(가운데)이 25일 두산과 홈 경기에서 연장 10회말 절묘한 기습번트 안타로 7-6 끝내기 승리를 이끈 뒤 정진기(오른쪽) 등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문학=SK)
프로야구 SK는 지난해부터 자타 공인 리그 최고의 홈런 군단이다. 지난해 역대 한 시즌 최다 기록을 갈아치운 데 이어 올해도 단연 1위를 달린다.
SK는 25일까지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 리그' 26경기에서 51개의 홈런을 날렸다. 144경기로 환산하면 282홈런 페이스다. 이는 지난해 자신들이 세운 234개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하지만 득점 생산성은 가공할 홈런포를 감안하면 썩 높지 않다. 지난해 SK는 득점에서 5위(761개, 평균 5.28점)로 리그 중간이었다. SK보다 홈런이 60개 이상 적은 KIA는 906득점, 평균 6.29점으로 1점 이상 높았다. SK는 팀 타율(2할7푼1리), 득점권 타율(2할7푼3리)에서 최하위였다. 희생플라이는 8위(41개). 팀 배팅보다는 큰 것 한 방을 노린다는 비판이 나올 만한 지표다.
올해는 그래도 나아졌다. 팀 타율 4위(2할8푼8리), 득점권 타율 2위(3할7리)에 득점 1위(평균 6.31점)다. 다만 홈런에서 23개나 뒤지는 두산이 득점 2위(평균 6.23점)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그만큼 팀 타선의 짜임새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SK에 외야수 노수광(28)의 가치는 크다. 홈런 타자들이 즐비한 팀에서 정확한 타격과 빠른 발을 이용한 스몰볼을 구사할 수 있는 선수기 때문이다. 물론 홈런은 SK의 가장 큰 무기지만 빅볼이 곤경에 처할 경우 경기를 풀어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26일 인천 SK행복드림 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홈 경기가 그랬다. 노수광은 홈런보다 단타 1개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멋지게 자기 임무를 수행해냈다.
'됐다' SK 노수광이 25일 두산과 홈 경기에서 연장 10회말 2사 3루에서 기습번트를 대고 1루를 향해 달리고 있다.(문학=SK)
SK가 2점 열세를 딛고 6-6 동점을 만든 연장 10회말 1사 3루. 승리를 위해선 1점을 더 필요했다. 일단 정진기가 나서 강한 타구를 날렸지만 전진수비한 두산 2루수 오재원의 호수비에 막혔다. 2사 3루.
다음 타자가 노수광이었다. 노수광은 오재원이 정상 수비 위치로 돌아간 것을 놓치지 않았다. 두산으로서는 타자만 잡으면 이닝을 마칠 수 있기에 일견 당연한 선택이었다. 노수광은 김승회의 초구에 기습번트를 댔다. 절묘한 번트는 화들짝 놀라 달려온 김승회의 옆을 지나쳤다. 허를 찔린 오재원이 다급히 공을 잡아 글러브 토스를 해봤지만 이미 '노토바이'는 1루를 밟은 뒤였다.
그대로 경기가 끝난 순간이었다. 노수광의 재치와 빠른 발이 만들어낸 극적인 대역전승이었다. 더불어 리그 최고의 짜임새를 자랑하는 두산 수비진을 상대로 만들어낸 멋진 플레이였다. 노수광의 야구 센스도 못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사실 이날 두 팀의 공방은 호쾌한 타격전 양상이었다. SK가 먼저 한동민의 2점, 김동엽의 1점 홈런으로 기세를 잡았고, 두산은 1-3으로 뒤진 9회초 박건우의 2점, 양의지의 1점 홈런으로 역전을 만들었다. SK 이재원이 9회말 다시 솔로포로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10회초 두산 조수행의 2타점, 10회말 나주환의 2타점 적시타까지 뜨겁게 치고 받았다.
하지만 정작 이날의 승부를 가른 것은 노수광의 재치였다. 물론 노수광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치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대 수비수들이 뒤쪽에 위치한 것을 보고 번트를 시도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올해도 SK는 삼진 2위(217개), 병살타 4위(24개) 등 불안한 지표들이 있다. 큰 스윙을 한다는 방증이다. 장점인 홈런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홈런으로만 야구를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세밀한 야구를 펼칠 수 있는 노수광의 존재는 더욱 값진 것이다. 울끈불끈이들 사이에서 가치를 높이고 있는 노수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