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왼쪽)와 영화 '뷰티 인사이드' 포스터(사진=JTBC·NEW 제공)
짧은 호흡을 지닌 영화가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드라마로 속속 다시 태어나고 있다. 120분가량 러닝타임으로 압축된 영화 속 흥미로운 인물과 사건을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볼 창작의 지평을 넓힌다는 데서 대중의 기대감이 높다. 다만 이미 검증된 콘텐츠를 좇으며 안주하려는 자기복제식 제작 풍토가 드라마 장르의 전반적인 질적 저하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JTBC는 지난 1일부터 16부작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를 방영 중이다. 한 달에 한 번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의 로맨스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시리즈로 '설국열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기상 이변으로 꽁꽁 얼어붙은 지구에서 생존자들을 싣고 끝없이 궤도를 달리는 열차 이야기다.
영화로 먼저 소개된 바 있는 이들 두 작품은 흥미로운 소재와 주제의식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엄밀히 말하면 '설국열차'는 프랑스 그래픽 노블에서, '뷰티 인사이드'는 유수 광고제를 휩쓴 캠페인 광고에서 설정을 빌려 와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해낸 창작물이다.
문화평론가 김성수는 "'설국열차'와 '뷰티 인사이드'에 국한해 이야기하면 이들 영화의 드라마화는 자기 색깔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계기로 여겨진다"며 "(상영시간이 제한된) 영화로는 충분한 설명이 부족했던 인물들을 제대로 살려낼 경우 훨씬 풍성하고 매력적인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을 텐데, 영화로 부각됐던 주제의식을 얼마나 새롭고 깊이 있게 관철시키느냐가 관건"이라고 평했다.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노동렬 교수는 "'설국열차'는 처음 볼 때부터 드라마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겠다고 여겼다. 원작 그래픽 노블이 지닌 계급 문제와 같은 고귀한 가치를 드라마로 보다 깊이 있게 다룰 수 있기 때문"이라며 "열차 안팎을 연동시키는 설정 등을 새로 집어넣는 식으로 작가의 창의력을 제대로 살린다면 영화와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120분짜리 영화를 상대적으로 긴 호흡의 드라마로 만드는 데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노 교수는 "드라마는 영화로 치면 6~8편 분량이기 때문에 캐릭터를 보충하지 않은 채 기존 영화 주인공 이야기만 갖고는 스토리텔링이 불가능하고 상투적일 수밖에 없다"며 "어떠한 인물을 보충해 이야기를 깊이 있고 풍성하게 만들 것이냐는 점에서 창작 영역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CJ E&M 박호식 책임 프로듀서(CP)는 "영화와 비교했을 때 '멀티 플롯'에 기인하는 드라마는 등장인물들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으려 하는데, 거꾸로 드라마를 하던 사람이 영화를 만들면 많은 인물을 담으려다 보니 중심 인물에 포커싱을 못하는 경향도 있다"며 "호흡을 결정하는 데는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담을 것인가라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남녀 주인공을 중심에 둔 이야기 호흡만으로는 드라마를 지탱할 수 없을 뿐더러 시청자들도 그것에 대해 지루해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자기복제 VS 등용문 '줄타기'…주제의식 탐구·충실한 제작 분위기 선결과제
영화 '설국열차'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처럼 영화를 드라마로 만드는 흐름이 생긴 데는 드라마 산업의 급속한 팽창을 무시할 수 없다.
노동렬 교수는 "영화에서는 짧은 장면으로 끝나 아쉬웠던 그래픽 등을 드라마에서는 여러 차례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작 단가를 떨어뜨리는 데도 효과적"이라며 "'설국열차'를 예로 들자면, 칸과 칸을 이동하는 극의 설정은 각 단계를 클리어하는 게임처럼 막과 장이 잘 구분돼 있기 때문에 드라마 제작에도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대중문화의 속성이 드라마 산업과 빚어내는 상관관계를 통해 현상을 진단하려는 목소리도 있다.
김성수는 "일단 대중문화 콘텐츠는 친근해야만 많은 사람들에게 팔릴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고 친근한 이야깃거리라는 점에서 당연히 리메이크가 중요한 제작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며 "'원 소스 멀티 유즈'(하나의 소재를 서로 다른 여러 장르에 적용하는 전략)를 본령으로 하는 대중문화 속성상, 영화의 드라마화는 성공 가능한 원천 콘텐츠가 부족해진 업계 상황을 반증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드라마 시장이 팽창하면서, 실패를 최소화하려는 산업화 메커니즘에 따라 이미 성공한 영화와 같은 콘텐츠를 쓸 수밖에 없는 현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결국 문화 콘텐츠의 자기복제가 성행하고 있는 셈인데, 그 산업적 득실을 잘 따져봐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박호식 CP는 "영화의 드라마화 같은 리메이크 열풍은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을 모두 지니고 있다"며 "부정적인 측면은 아이템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보다는 기존 작품의 인지도에 기대려는 것이고, 긍정적인 측면은 그러한 리메이크작에 신인 작가를 기용함으로써 또 다른 등용문 기능을 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박 CP는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수가 110개 정도인데, 이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많은 작가들의 풍성한 이야기가 다양하게 소개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어떤 아이템을 리메이크하느냐 안 하느냐, 신인작가를 기용하느냐 안 하느냐라는 단편적인 문제보다는, 그 아이템을 충실히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사나 스태프들이 알차게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라는 제작 현장 분위기가 더욱 중요하게 조명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주당 근로시간이 최대 68시간으로 줄면서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도 높은 집중도가 필요해진 상황인데, 그 기획 아이템이 좋은 드라마로 충실히 제작됨으로써 전반적인 질적 저하를 부르지 않도록 신경쓰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김성수는 "드라마와 영화의 호흡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영화가 전하는 주제의식을 드라마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부각시킬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탐구와 고민이 선결돼야 한다"며 "이러한 미학적 태도에 대한 고민들이 어느 정도 정리된 뒤에 인물 구도와 사건 등을 드라마라는 성격에 맞게끔 과감하게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