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양진호 방지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목을 잡혔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신설한 이 개정안은 지난 9월 여야 만장일치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국당 이완영, 장제원 의원 등이 반대 의견을 밝히며 제동을 걸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모호해 사업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법안 심사 2소위원회로 넘겨져, 논의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는 처지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정말 사업장에 혼란 줄 만큼 모호할까?
먼저 근로기준법 개정법률안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보자.
개정법률안 76조의 2항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대해 '희망을만드는법'의 김동현 변호사는 "국내의 유사개념(직장 내 성희롱) 이나 외국 입법례와 비교해 보았을 때 (정의가) 불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괴롭힘 조례를 1993년 세계 최초로 제정한 스웨덴은 직장 내 괴롭힘을 "개인 근로자에 대해 공격적인 방식으로 반복되어 행해지는 비난받을 만하거나 부정적인 행동으로서, 해당 근로자가 직장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행동"으로 정의한다.
프랑스는 노동법을 통해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와 존엄을 침해하거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고, 근로조건의 악화를 초래하는 정신적 괴롭힘의 행위를 반복적으로 겪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 형법은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 가해자나 사용자에게 징역 2년 또는 3만 유로 이하의 벌금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캐나다의 퀘벡 주에서는 2004년 개정된 노동기준법에 따라 "노동자는 '정신적 괴롭힘'에서 벗어난 노동 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정신적 괴롭힘이란 '노동자의 존엄성이나 정신, 신체적 온전함(integrity)에 영향을 미치고 노동자에게 유해한 노동 환경을 초래하는 반복적이고 적대적인 모든 행위, 말, 또는 몸짓의 형태'를 의미한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2003년부터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일의 과정에서, 또는 일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합리적 행동 범주에서 벗어나 그에 따라 폭행, 위협, 해를 입거나 상해를 입는 모든 행위나 사건, 또는 행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17년 보고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서 해외 입법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 내에서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침해하여 노동자의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앞의 사례들과 비교해보면 대체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및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포함해 규정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의견서를 통해 "관련 해외 입법례와 비교해볼 때, 징계 대상 행위의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규정된 개념"이라며 "광범위한 규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현행법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서도 기본 개념을 '근로기준법'에 규정하고, 구체적인 행위는 하위 법령(시행규칙)을 통해 명시해뒀다.
또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도 기본개념을 근로기준법에 규정하고, 구체적인 행위 태양을 하위 법령이나 가이드라인을 통해 구체화한 사례를 들어 "오히려 모든 형태의 직장 내 괴롭힘을 일일이 법조문에 규정하기 어렵고, 개정 가능성 등을 고려해 직장 내 성희롱과 같이 하위 법령에 구체적 행위를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라, 근로기준법 개정 법률안은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벌칙을 두고 있지도 않다.
이는 프랑스의 노동법이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해 비교적 엄격한 징계 규정을 두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점이다.
김 변호사는 "법률의 명확성 원칙이 '벌칙의 유무'와 밀접히 관련되어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벌칙이나 과태료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의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주장은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처벌 규정을 명확히 두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근로자 중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9.5% 였다. 이는 2010년 실시된 '제 5차 유럽 근로조건조사'에 따른 결과로, EU-27 전체 근로자 중에서는 4.1%가 지난 12개월 동안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지난 2월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근로자의 60%가 넘는 비율이 직장에서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응답자가 많았던 프랑스보다도 6배 가량 높은 수치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이제는 '일상화' 된 셈이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근로기준법 개정법률안 처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 7월,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 대책'을 확정했다. 여기에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와 사업주의 책임 등을 명시하고 있으나, 관련 법령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회의 의지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