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과정에서 불 붙은 국회 대치 구도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까지 옮겨 가 좀처럼 꺼지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이 180만을 돌파한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국민논쟁 게시판으로 변모해 그 어느 때보다 과열되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원은 물론이고, 특정 의원에 대한 처벌, 청와대 해산과 문재인 대통령 탄핵 청원,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청원, 이에 맞서는 반대 청원까지 온갖 청원들이 난립하고 있다. 현재 전체 추천순 '탑5'에 오른 청원 중 3개가 모두 정치개혁 청원인 점에서 해당 게시판을 이용하는 국민들의 관심 방향을 알 수 있다.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에 '맞불'을 놓은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원은 30만을 돌파한 29일 청원 외에도 유사한 내용으로 10건이 더 게시됐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4대강 보 해체를 위한 다이너마이트를 빼앗아 문재인 청와대를 폭파시켜버리자"라는 발언으로 내란죄 처벌 청원의 주인공이 됐다.
청원 게시자는 "국가의 기강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며 김무성 의원을 내란죄로 다스리기를 촉구했고 청원은 8일 현재 17만 명을 돌파한 상황이다. 김무성 의원을 내란죄로 고발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은 2건이 더 올라왔다.
아예 청와대를 겨냥한 청원도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정당이 아닌 청와대 해산을 주장하는 청원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원이 바로 그것이다.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는 청원은 마감일을 10일 앞두고 8만 명을 돌파했다. 그러자 '형 집행정지'·'사면' 불가 청원이 팽팽하게 맞섰다.
정책과 무관하게 진행된 대표적인 청원은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삭발' 청원이다. 2일 게시된 이 청원은 10분에 1만 명씩 빠르게 동의자들이 늘어났지만 현재 비공개 처리됐다. 이후 일각에서는 국민청원 게시판까지 옮겨 간 삭발 논쟁에 게시판 취지에 맞지 않는 청원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우려가 짙다. 처음에는 대의 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하는 참여 민주주의의 한 정책으로 시작됐지만 이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진영 갈등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김성수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일 CBS노컷뉴스에 "참여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바람직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고 그렇게 쓰일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게시판이 진영 논리에 따라 가면서 정책적인 문제의 본질이 자꾸 사라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현재 국민들은 사회 문제를 구조적 시스템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짙다. 그렇다면 시스템을 넘어서는 큰 그림이 이야기돼야 하는데 다양한 흥미와 이익, 그 자체만을 표출하는데 그치고 있다. 오히려 사회 갈등에 치우치는 편가르기가 심화되고 있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갈등이 점차 증폭되는 방향으로 간다면 결국 국민 개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문제 해결은 그치고 본말이 전도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갈등을 낮추는 방향으로 운영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모든 정권은 바뀔 때마다 개혁과 부패 청산을 위한 시도를 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기득권층과 갈등이 생긴다. 만약 이 게시판이 그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사회적 갈등만 강화되고 국민 개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만 이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사회적 갈등의 수준이 낮아진다면 오히려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