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로 인해 벌목작업이 진행돼 산사태 위험에 노출된 강릉시 옥계면 산불피해지역. (사진=전영래 기자)
"새로운 보금자리를 짓고 있는데 혹시 산사태가 덮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서는 절대 안됩니다!"
지난 4월 발생한 대형산불로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강릉시 옥계면의 한 야산. 지난 27일 오전 취재진이 다시 찾은 이 곳은 산불이 난지 3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피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커멓게 탄 나무는 밑둥만 남았고, 곳곳에 잘려나간 나무와 잔가지들이 쌓여 있었다. 간간히 초록빛을 띠는 새싹이 돋아 있었지만 시뻘건 흙빛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울창했던 숲이 벌거숭이가 되면서 주민들은 산불 피해에 이어 장마철을 앞두고 더욱 수심이 깊어 보였다. 당장 많은 비가 쏟아질 경우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산사태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27일 강릉 옥계면의 한 주민이 벌거숭이가 된 산비탈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전영래 기자)
산비탈 아래 살고 있는 주민 최석천(66)씨는 "과거 태풍 루사가 왔을때 나무가 무성했지만, 뒤에 있던 밭까지 모조리 쓸려 내려갔다"며 "산에 나무하나 없는 상황에서 장대비가 쏟아진다면 제대로 버틸 수 있겠나"고 불안감을 내비췄다.
최씨의 아내 고옥분씨는 "당장 새로운 보금자리를 짓고 살아야 하는데, 장마가 시작되면서 불안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아직 산불로 인한 상처도 아물지 않았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제발 안전하게 살수 있도록 빨리 조치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심정을 털어놨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실제로 산불이 났던 지역은 일반 산림보다 산사태 위험이 높다. 빗물 흡수력과 함께 토양을 잡아주는 힘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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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산림과학원 서준표 박사는 "기본적으로 나무 뿌리가 토양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산불 발생 이후 뿌리가 썩어가면서 흙을 잡아주는 힘이 약화된다"며 "또한 산불이 나면 나무나 식생 등이 연소되면서 불투수층이 형성돼 빗물 흡수력도 약해져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고 설명했다.
강릉 옥계면 산불피해지역에서 복구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전영래 기자)
지난 4월 강릉과 동해, 속초,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지역 중 산사태 우려가 있는 곳은 모두 45곳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에서는 산불 피해지역 일대를 '산사태위험지역 응급복구' 대상지로 선정하고 복구작업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복구율은 40~60%를 보이며 더디기만해 장마철을 앞두고 주민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주민 함모(52)씨는 "시청에서 복구를 해 준다고는 했지만 장마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하나도 이뤄진게 없고, 가을쯤 복구가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위급한 상황에서는 아흔이 넘는 부모님을 모시고 대피를 해야겠지만, 또 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서는 절대 안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 이동우(60)씨는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주민들이 봐도 정말 심각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 많다"며 "어르신들이 많이 계셔서 갑자기 산사태라도 날때 대피도 쉽지 않은 만큼 항상 긴장한 상태로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강릉시 관계자는 "지난 5월 8일부터 본격적인 복구작업에 나섰지만 산주나 집주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다소 지연되는 부분이 있었다"며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는데 집중하는 한편, 산사태현장예방단을 운영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월 휩쓸고 간 '화마'에 의한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산불 피해지역 주민들.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산사태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 지 노심초사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