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근 전 검사장. (사진=연합뉴스)
자신이 성추행한 서지현 검사에게 고의적으로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기소된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2심에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이성복 부장판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한 안 전 검사장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 판단대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성추행 문제가 계속 불거지면 검사로서 승승장구한 경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서 검사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식으로 사직을 유도하거나 평판에 치명타를 입히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는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소문이 검찰 내·외부에 퍼지고 이에 대해 감찰까지 진행됐는데 정작 당사자만 몰랐을 리 없다고 봤다. 안 전 검사장이 이러한 점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는 서 검사에 대해 인사불이익을 준 '동기'에 해당하는 부분이어서 이번 재판의 쟁점이었다.
안 전 검사장 측은 지난해 1월 서 검사가 언론에 성추행 피해를 폭로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 성추행이 있었던 2010년 10월 장례식장에서 안 전 검사장은 매우 만취한 상황이어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다수 검사가 당시 성추행을 목격하고 그에 관한 소문이 돌았으며 감찰까지 진행됐다"며 "감찰에서 유리한 결과(징계 없이 종결)가 나왔음에도 피고인과 각별한 사이였던 감찰담당관이 이를 알리지도 않았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고 경험칙에 명백히 반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서 검사를 갑작스럽게 통영으로 발령 낸 것 역시 안 전 검사장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인사위원회가 열린 2015년 8월 17일까지 평검사 인사안에서 서 검사는 전주지검 발령이 예정돼 있었는데, 인사위 다음날인 8월 18일에 갑작스럽게 통영지청으로 발령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검찰인사위원회 전까지 평검사 인사안이 확정되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이라는 판단이다. 서 검사의 경우 부치지청(차장검사가 없는 소규모 지청)인 여주지청에 근무 중이었는데, 서울에서 가장 먼 부치지청(통영)에 또다시 배치하는 것은 2000년 이후 검찰 인사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도 하다.
특히 안 전 검사장 직속 인사 담당 실무자였던 신모 검사는 2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안 전 검사장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기도 했는데, 재판부는 이를 배척했다.
재판부는 "증인은 4회에 걸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바꿔 누군지도 특정되지 않은 '최모 검사의 선배'로부터 통영지청 발령에 관한 고충을 들었다고 새롭게 진술했다"며 "그가 기억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심되고 어느 모로 보나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인사의 근거로 제시하는 서 검사에 대한 세평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으며 갑자기 고려해야 할 새로운 것도 아니다"라며 "보직 평가나 경로도 이 인사에 대한 합당한 근거가 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 검사는 8월 17일까지 서 검사 대신 통영지청 발령이 예정됐던 인물이다. 신 검사는 인사발령 전 최 검사에게만 전화를 걸어 통영지청 발령에 대한 고충을 듣고 서 검사의 발령지와 바꿨다.
직권남용 법리와 관련해 안 전 검사장 측이 검찰 인사의 직무집행 기준과 절차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고 주장한 부분도 원심과 마찬가지로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인사위원회 제도와 이를 통해 축적된 여러 원칙이 정리된 '검사인사원칙집'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안 전 검사장과 그 지시를 이행한 검사인사담당 검사에게는 인사 직무집행 관련 고유 권한이 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서 검사는 성추행은 물론이고 인사상 불이익이라는 큰 피해를 입었다"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쟁점으로 검사로서 명예가 실추되는 등 오랜 기간 큰 피해를 겪어 피고인에 대해 엄중한 양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날 남색 정장을 입고 나온 안 전 검사장은 재판부의 선고 도중 고개를 떨구며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고를 마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구치소로 이송을 위해 법정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