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게임을 하는 중국 청소년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이 게임중독 억제를 위해 18세 이하 청소년이 하루 90분 이상 게임을 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실명제를 도입해 인증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용자에 대해서는 서비스를 중단하도록 하는 '중국판 셧다운제'를 시행하기로 하면서 청소년 보호와 게임산업 위축에 대한 엇갈린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 국가신문출판서(전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5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게임중독 방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전세계 게임산업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의 2018년 전체 매출은 380억달러(약 44조원)에 달하고 있어 게임업계의 시선이 향후 여파에 쏠리고 있다.
▲만 18세 이하 청소년은 밤 10시부터 오전 8시까지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평일 하루 90분까지만 게임 이용이 가능하지만, 휴일에는 최대 3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다.
▲만 8세 이하 아동은 게임내 아이템 등 유료구매를 할 수 없다. 만 8세 이상 16세 이하 청소년은 매달 최대 200위안(약 3만3000원)까지 결제가 가능하며, 1회 한도 50위안(약 8300원)을 넘을 수 없다. 만 16세 이상 18세 이하 청소년은 최대 400위안(약 6만6000원)까지 결제가 가능하며, 1회 한도를 100위안(약 1만6500원)으로 제한한다.
▲모든 중국내 게임은 실명 인증이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며, 가이드라인 발표 직후 2개월 내 시행되어야 한다. 실명가입이 아닌 사용자에 대해서는 게임 서비스를 중단해야 한다.
'중국판 셧다운제'로 불리는 이 가이드라인은 한국의 대표적 게임규제로 꼽히는 '셧다운제'보다 강력한데다, 연령 등급 시스템 도입과 함께 규제 폭을 기존 PC 온라인게임에 이어 모바일게임까지 대상을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중국 정부의 통제 성향으로 볼 때 중국 최대 게임 콘텐츠 기업인 텐센트를 비롯한 중국내 게임산업에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전망이다.
게임 인프라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한 범죄나 게임 과몰입을 방지하고, 실명제를 통해 게임의 범죄화를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 전체 인터넷 사용자 중 미성년자 비율은 약 20%로 1억7천 만명에 달한다.
(사진=노컷뉴스DB)
신화통신에 따르면, 국가신문출판서 대변인은 "이번의 새로운 규정은 인터넷 공간을 투명하게 만들고 미성년자의 신체와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기업의 책임에 방점을 두었으며, 이를 감독할 정부의 의무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은 정부의 규정을 준수해야 하며, 게임사가 경찰과 협력해 실명 등록 시스템을 구축하면 규제당국이 정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게임 이용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1년 도입된 한국의 셧다운제는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방지를 위해 16세 미만 청소년이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온라인게임에 접속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게임내 결제한도 제한은 도박성이 강한 온라인게임에 돈을 탕진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2007년부터 시행돼 왔다.
게임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순기능과 별개로, 실제 게임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있다 하더라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지적이 최근 제기되면서 신산업 규제 샌드박스와 함께 셧다운제 완화, 성인 결제한도 폐지 등 규제가 완화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인터넷게임이용장애(IGD·Internet Gaming disorder)'를 국제질병분류체계에 포함시키면서 유럽(EU)을 비롯한 국내외 주요 국가에서는 공공보건 정책을 이유로 게임규제와 치료 시스템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이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게임산업을 여전히 통제하려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앞서 지난해 8월 중국 정부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시력 보호"를 이유로 온라인게임 수를 제한할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텐센트의 최고 흥행작 모바일 MOBA 게임 '왕자영요(王者荣耀)'를 지목하며 "젊은층의 게임중독을 야기시켰다"고 비판하며 게임업계가 자정 시스템을 강력히 요구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일보는 "게임 과몰입때문에 군인들의 전투능력을 저해하는 심각한 안보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국금증권(Sinolink Securities)의 최신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은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할 것"이라면서도 "중국내 미성년자가 차지하는 PC, 웹, 모바일게임 수익은 전체 시장의 20%에 불과해 게임산업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최대 게임사 텐센트와 넷이즈가 지난해부터 이미 미성년자 게임이용 시간을 대폭 제한했고, 미성년자가 부모의 신분증을 이용하거나 사용자 개인정보가 해킹되지 않도록 '왕자영요'와 같은 일부 게임에 얼굴인식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중국 텐센트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한편, 국내 게임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른바 2016년 '사드(THAAD) 사태' 이후 중국내 게임 서비스 허가제인 '판호'를 국산 게임에는 단 한건도 내주지 않았다. 정치적 문제에서 비롯됐지만 중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지난 5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상하이국제수입박람회 개막식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참석해 "중국은 보호주의와 일당주의를 반대한다"며 "중국 개방의 문을 확대해 세계 시장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말해 국내 산업은 물론 게임업계의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이에 맞춰 같은 날 중국내 게임규제 폭을 동시에 강화한 것은 '게임중독' 해법을 이유로 내수시장을 방어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일찌감치 중국시장에 진출해 대흥행을 기록한 게임으로 넥슨의 '던전앤파이터'를 비롯해 '미르의전설', '크로스파이어' 등이 선전하고 있지만, 중국산 카피게임의 범람과 국산 신규게임 진출이 막혀있어 사실상 평등한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세계 배틀로얄 열풍을 일으킨 크래프톤 펍지(PUBG)의 '배틀그라운드'는 텐센트가 중국 서비스에 나섰지만 다른 유사게임과 달리 심의당국으로부터 폭력성이 짙다는 비판을 받았고, 텐센트가 개발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은 판호를 발급받지 못했다.
반대로 중국산 게임은 별 규제없이 한국시장 진출에 용이해 국내 게임 순위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중국내 게임규제 강화가 결국 텐센트를 앞세운 중국게임의 해외진출을 더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국산게임의 경쟁력 하락이 우려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