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연합뉴스)
선거법과 검찰 개혁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들을 처리를 위해 더불어민주당과 '야(野) 3+1'이 풀어내야 할 마지막 실타래가 석패율제가 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 영남 대 호남이라는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거론되기 시작한 석패율제에 대해 여야 각당이 예전과 다른 셈법을 적용하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석패율 '효시'인 민주 왜 반대하나한 명의 후보자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선거에 동시에 출마해서 그들 중 가장 아쉽게 지역구에서 패배한 사람을 비례대표로 당선하게 해주는 석패율제도는 1998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언급을 하며 정치권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1992년 14대 총선 낙선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 전 대통령은 15대 총선을 9개월 앞둔 2015년 7월 정계에 복귀에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고 원내 100석 확보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텃밭인 호남과 일부 수도권 의석을 제외하고는 강원, 충청, 부산·경남(PK), 대구·경북(TK)의 모든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는데 실패하며 79석 확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00년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당시 서울 종로 현역의원이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 북·강서 을에 출마해 35.7%이라는 고득표율에도 불구하고 낙선함은 물론 새정치국민회의의 후신격인 새천년민주당이 여전히 영남의 지역구에서 단 한 석도 가져오지 못한 점은 민주당계에게 큰 상처였다.
이에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 모두 석패율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언급하기 시작했고, 현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도 당 대표이던 2015년 지역구도 타파의 해결책으로 "권역별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를 줄곧 주장해왔다"며 여러 차례 석패율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그 후 석패율제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던 민주당은 돌연 이번 달 선거제 협상 국면에서 석패율제 반대에 나섰다.
명시적 사유는 비례대표 제도의 근본 취지 훼손이다.
비례대표라는 것이 정당이 자신들의 강조하고 싶은 분야, 예를 들어 장애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나 경제, 안보, 과학기술 등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함으로써 당의 정책적 방향성과 신념을 제시하기 위한 도구인데 석패율제를 도입해 일반적인 비례대표 의석수를 자꾸 줄이면 비례대표제도를 시행하는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석패율 당선을 노리고 소수정당 후보자들이 지역구 선거에서 완주를 할 경우 경합지역에서 당선됐던 자당 의원들이 낙선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8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석패율제 도입을 강하게 반대한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로 알려졌다.
서울의 경우 이기든 지든 크지 않은 격차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경쟁을 펼치고 있는 지역이 많아 정의당 등 민주당과 정체성 스펙트럼이 겹치는 정당 후보가 중도에 레이스를 포기하거나 단일화를 하지 않을 경우 낙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 취지가 최대한 사표를 줄여 득표율과 의석비율을 유사하게 하자는 것인데, 이와 상충되는 현행 정당득표율에 따른 병립형 비례대표제의 기본 취지를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지난 4월에 합의했던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한다는 점도 모순이다.
민주당은 합의지점이 당초 지역구 225석 대 비례대표 75석에서 지역구 250석 대 비례대표 50석, 그 50석 중 연동형비례대표제를 30석에 적용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도 석패율제 도입에 부정적인 환경이라고 주장한다.
석패율 적용 가능 의석수가 20석에 불과하고 현재 논의 중인 적용 범위도 3~6석 수준이어서 지역구도 완화의 효과가 적다는 것인데, 과거 석패율을 주장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지역구도를 깨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효과가 적어도 현행보다는 나을 텐데 이를 이유 삼아 반대한다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특히 현재 3~5%를 두고 조율 중인 원내진입 관문 봉쇄조항만 넘어선다면 어느 당이든 석패율제로 의석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국회의 질적 하락이나 표의 등가성 훼손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당제를 막기 위한 기득권 정당의 논리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왼쪽부터), 민주평화당 조배숙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 바른미래당 김관영 최고위원이 12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여야 4+1 원내대표급 회동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확대이미지
◇석패율 극구 반대하던 진보정당은 왜 석패율을 원하는가2011년 4월 4일,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망국적 지역주의가 완화돼 지역주의 때문에 아깝게 낙선한 인재들이 원내에 진출하는 것이 지역발전과 정치선진화에 막대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며 "석패율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석패율제 도입을 호언했던 한나라당의 후신인 한국당이 현재 석패율제에 반대하는 것도 문제지만 정의당의 입장이 가장 강한 반대에서 가장 강한 찬성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한 점이 더 눈길을 끈다.
3일 후인 2011년 4월 7일 현 정의당의 전신격인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당시 원내대표와 또 다른 전신격인 진보신당의 노회찬 당시 상임고문은 '석패율제 과연 올바른 정치개역인가?'라는 제목의 긴급토론회에 참석해 석패율제 도입을 강하게 반대했다.
권 전 의원은 "지역주의 극복의 길은 석패율 제도와 같이 그 자체를 완화시키는 것에서 찾을수 없다"며 거대정당의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야합시도가 벌어지고 있다"고 석패율 논의를 폄하했다.
노 전 의원은 "현재 의석 규모에서 석패율제를 도입한다면 비례대표제를 통한 소수대표성 확보나 정당의 정책 및 이념적 지향을 정책화해 나가는 기능이 크게 약화된다"며 지금의 민주당이 우려하는 지점과 똑같은 주장을 했다.
당시 의석규모는 지역구 245석 대 비례대표 54석으로 오히려 현재 논의 중인 250석 대 50석 보다 비례 의석이 더 많았음에도 이같이 주장한 것이다.
노 전 의원의 이후 발언은 더욱 충격적이다. 그는 "석패율제는 큰 정당의 다선 의원들의 안정적인 재선 통로가 돼버릴 가능성이 더 크다"며 "석패율로 구제된 의원들, 이른바 '좀비 의원'들은 명목상으로는 비례대표지만 사실상 해당 지역구를 대표하는 의원인 셈으로 이들로 인해 비례대표제의 취지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까지 지적했다.
당시에는 진보진영에는 3선 이상인 다선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기에 이같은 발언이 가능했겠지만, 노 전 의원이 마지막으로 몸 담았던 정의당을 비롯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가칭) 등 이른바 '야(野)3+1'이 좀비 의원을 양산하려고 한다고 과거에 진단한 셈이 된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현재 한국당과 민주당의 비판 지점과 일치한다.
한국당은 석패율제가 도입될 경우 바른미래당 손학규, 민주평화당 정동영, 정의당 심상정, 대안신당 박지원 등 인지도가 높은 이른바 '거물' 정치인들의 재선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민주당도 석패율이 중진 구제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며 수위는 낮지만 한국당과 결이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석패율 대상에 중진 제외하자" 등장…20대 국회 최종 선택은?
이같은 혼전 속에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은 20일 "노 전 대통령 시절부터 민주당 자신들이 항상 주장 해왔던 석패율에 대해 이제 와서 개악인양 호도하는 것은 심각한 자가당착이며 얕은 수작일 뿐"이라며 "특히 석패율의 수혜자가 박지원, 유성엽 등 호남 중진이라며 밥그릇 챙기기로 몰아가는 모습은 저열하고 비열한 소인배 정치의 전형"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어 유 위원장은 "석패율에 대해 후보자 중 중진을 제외한 청년, 여성, 정치신인 순으로 그 대상자를 한정하도록 한다"며 민주당에 다시 공을 넘겼다.
우려 지점을 제거해 줄 테니 석패율제 도입을 수용하라는 최후 통첩인 셈이지만 당사자인 민주당은 물론 바른미래, 평화, 정의 등 나머지 3+1도 아직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논의 중인 석패율제는 앞서 언급한 여야 각당 주장과 같은 단점도 있지만, 현행 소선거구 제도의 단점인 사표를 줄이고, 중진뿐 아니라 지역구 강자를 넘지는 못했지만 아쉽게 패배한 정치 신인을 구제할 수 있으며, 거대 양당이라 하더라도 절대 열세 지역에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장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야가 20대 국회의 마지막 난제인 석패율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