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캠피싱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최근 서로 알몸을 보여주는 '음란채팅'을 한 뒤, 이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몸캠피싱'이 기승하고 있는 가운데, 돈이 없는 미성년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피싱 조직이 자신들의 아이디를 '홍보'하도록 요구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를 당한 미성년자들은 유포를 막고자 급한 마음에 피싱 조직이 요구하는 대로 홍보글을 올렸다. 이는 법적으로 처벌될 수도 있지만, 피해 사실을 주변에 쉽게 알리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해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2주 동안 매일 6시간 동안 범죄조직 '홍보글' 올린 미성년자 A씨"야하게 놀아요~ 화끈한 밤 같이 보내요~ 저랑 폰X 즐겨요~ 카톡 아이디 OOOO 추가~"
지난해 1월 중순부터 고등학생 A군이 약 2주 동안 매일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6시간 동안 각종 채팅 어플에 남긴 홍보글이다. 그에게 주어진 할당량은 매일 수십 건.
A군은 이른바 '몸캠피싱' 피해자다. 지난 2018년 12월쯤 한 여성이 SNS로 걸어 온 '친구 추가'를 승낙한 게 화근이 됐다. "같이 얘기나 하면서 놀자"며 채팅을 통해 말을 걸어 온 여성과 대화를 나누던 그는 영상 통화까지 이어가게 됐다. 영상으로 서로의 알몸까지 보여주게 됐다는 A씨는 상대가 진짜 '여성'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문제는 영상통화 중간에 여성이 보낸 압축파일을 해제하면서 발생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A군의 말에 여성이 "이걸 설치해야 들린다"며 한 압축파일을 보내줬다. 해당 파일에는 악성 코드가 숨겨져 있었지만, A군은 백신 프로그램의 경고도 무시한 채 모두 설치해버렸다.
영상 통화가 종료되자 여성은 돌변했다. "영상 녹화됐습니다. 주소록에 있는 지인분들한테 전부 날려드릴까요, 아니면 조용히 삭제하실래요?"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여성으로 알았던 해당 계정은 '몸캠피씽' 조직의 일원이었다.
처음에 100만원을 요구하던 피싱범은 A군이 "돈 없는 학생이다"고 하자 50만원으로 '깎아' 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A군이 도저히 구할 수 없다고 하자 "돈 갚을 때까지, 우리 SNS 계정 홍보해라"고 요구했다.
몸캠 피싱·조건만남 사기 조직과 피해자 간 대화 내용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니가 학생이고 돈 없는 거 아니깐 몸으로 때워"…조직적으로 관리하기도피싱범은 피해자가 미성년자라고 봐주지 않는다. 미성년자의 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고, 법적 지식이 부족한 점 등을 악용해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미 해킹한 정보를 통해 피해자가 미성년자임을 알고는 처음부터 "돈 없는거 아니깐, 몸으로 때워"라면서 그들을 '홍보노예'로 부린다.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피싱범이 운영하는 '단톡방'도 있다. 해당 단톡방에는 A군과 같은 피해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5명 정도 있는데, 피싱범은 이들에게 링크를 주면서 'XX사이트에 홍보해라', '이렇게 써라'라면서 지령을 내린다고 한다.
또 다른 미성년자 피해자 B군은 "한 달 동안 홍보하면 갖고 있는 영상을 지워준다고 했다. 처음에는 일단 유포만은 막자는 심정에 열심히 홍보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걸 한다고 진짜 영상을 지워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러다가 평생 홍보를 하게 될 것 같아서 업체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피싱범들의 요구를 들어주다가 공범으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청소년이 곤궁한 처지에 놓여 가담했어도 결국 범죄 수단, 도구가 된 것"이라며 "홍보 글을 올리라고 실제 주문한 피싱범을 '간접정범'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 홍보를 한 청소년을 법적 처벌에서 구제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사이버보안협회 김현걸 이사장은 "홍보를 시키는 이유 중에는 이들을 공범으로 만들어서 자신들을 신고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홍보를 한다고 한들 피싱범들이 피해자들의 영상을 절대 삭제해 주지는 않는다"고 경고했다.
(그래픽=연합뉴스)
◇ 몸캠피싱 피해자 청소년이 50%…전문가 "미성년자 온라인 성착취 대책 마련해야"몸캠피싱 피해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전체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라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두려움에 피해 사실을 부모에게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미성년자 온라인 성범죄 사건을 전담으로 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몸캠피싱 신고 건수는 2015년 102건에서 2017년 1234건으로 급증했다. 피해 금액 역시 같은 기간 1억 1200만원에서 18억 8900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몸캠피싱 자체가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어려운 문제라 실제 통계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여명 의원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몸캠 피싱 피해자는 3만1000명에 이른다. 이 중 미성년자만 절반에 가까운 1만 5000명에 이른다고 여 의원은 밝혔다.
미성년자들은 몸캠피싱 피해가 발생해도 주변에 알리는 것을 꺼려했다. 미성년자 피해자 C군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처음에는 혼날까봐 부모님한테 알리거나, 경찰 신고도 못했다"면서 "인터넷으로 (피해를 구제해주는) 업체를 알아봤지만 여기도 돈을 내라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미성년자 몸캠피싱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이 따로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 차원에서 미성년자 피해자들을 위한 전담 기구를 신설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온세상의 김재련 변호사는 "영국과 같은 경우에는 온라인 아동 성학대 방지를 위한 국제 회의를 정부가 주재하기도 했다"며 "'소년국' 같은 것을 만들어 아동 성착취 사건만 전문으로 하는 특별 전문기구를 수사기관 산하에 두면 보다 신속한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익명 신고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김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미성년자는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 위해 법적으로 부모 동의를 필요로 하는 등 피해 사실을 알리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면서 "외국처럼 익명으로 신고를 받는 제도 등이 구축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