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게임업계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여성 노동자가 계약 해지를 당하는 일이 또 벌어졌다. 게임 개발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머리를 박고 사죄하는 사진과 함께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국산 인디게임 '크로노 아크'의 스킬 일러스트로 활동했던 A씨는 지난해 11월 25일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여성살해 멈춰라" 프랑스 물들인 '보랏빛 행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했다.
기사는 프랑스 파리에서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137명을 추모하고 '페미사이드'(남편이나 동거남, 전 남자친구 등에 의한 여성살해)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다음달에는 "외주로 스킬일러스트 작업한 크로노 아크가 출시됐다. 대박나라"는 글을 직접 올렸다.
이 트윗이 결국 화근이 됐다. 지난 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같은 내용이 전해지자 크로노 아크 유저들의 게임 '보이콧' 선언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남자 유저가 '메갈'이 만든 게임을 싫어하는 건 당연하다. 내 욕하는 여자들 밥 먹여 주는 모양새가 됐는데 복창 터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해당 일러스트를 당장 갈아치워라. 갈아치우지 않으면 우리에게 물어뜯길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반응이 심상치 않자 크로노 아크의 개발자 B씨는 그날 밤 바로 공개 사과에 나섰다. 바닥에 머리를 박고 절을 하는 사진과 함께였다.
B씨는 "제 미숙한 검토와 일러스트레이터 선정으로 인해 유저 여러분들께 상심을 드린 점 죄송하다"며 "해당 스킬 일러스트는 교체하겠다. 앞으로 스킬 일러스트, 그 외의 모든 것에 대해 이번 일을 계기로 철저한 검토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페미니스트 게이머 단체 '페이머즈'는 '게임계_내_사상검증OUT'이란 해시태그를 붙여 성명문을 냈다.
페이머즈는 "게임 크로노 아크에서 사상검증이 발생했다. 업계 여성 노동자는 또 다시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블랙 컨슈머들의 주장으로 직업적 불이익을 당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개인 SNS에 올린 글은 사상검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노동자에게 업무와 무관한 특정 정치적 입장을 묻고 이를 고용과정에 적용하는 것은 명백한 노동권 침해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한국 게임업계에서는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사상검증'이 버젓이 자행됐다. 지난 2016년에는 넥슨의 게임 '클로저스' 제작에 참여한 성우 김자연씨가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SNS에 인증했다는 이유로 계약이 해지됐다.
지난해에는 한 일러스트 작가가 3년 전 김자연씨를 지지하는 글을 올렸던 것이 문제가 돼 게임 제작업체에서 퇴출당하는 일이 있었다. 2018년에도 '소녀전선', '소울워커', '벽람항로' 등에서 해당 작가에 대해 '메갈 의혹'이 제기됐다는 이유로 캐릭터와 일러스트를 교체되기도 했다.
김희경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장은 10일 CBS노컷뉴스에 "업계에서 한 번 낙인이 찍히면 대체로 후속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다"며 "이른바 '사상' 문제에 한 번 휘말린 여성 노동자들은 국내 일은 대부분 끊겨 해외 일을 주로 하거나 다른 업계로 전향한다. 피해를 입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은 국내 게임 업계 실태를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일러스트레이터 분들은 대부분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대응할 방안도 따로 없다. 2018년에 같은 이유로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당한 작가들이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신고하기도 했지만 강제성이 없는 '권고'가 나왔다. 게임업체에 지원해주는 사업비를 깎는 등의 실질적인 제재안 혹은 사회적으로 관련 보호법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게임업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