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역학조사관, 관계 공무원들이 25일 경기 과천시 별양동 신천지 과천총회본부에서 코로나19 관련 역학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경기도청 제공)
여기저기 난리다.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이단 신천지 색출에 나선 사람들. 교회는 주일 예배에 낯선 이들의 참여를 막아섰고, 신천지 신도가 다녀갔거나 운영해온 공방과 연구소는 문을 닫았다.
신천지 신도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지난 24일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전국 최초로 긴급행정명령을 발동했다. 경기도 안에서는 신천지 관련 시설이 폐쇄됐고, 집회도 열 수 없다.
29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28일 오후 8시 기준 신천지 시설로 확인됐거나(289곳) 확인작업이 필요한(92곳) 391곳을 폐쇄했고, 이후에도 주민들의 제보를 받아 신천지 의심 시설들을 찾아내기 위해 매일 확인 작업에 나서며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 제보 받은 신천지 의심시설…확인해 보니 '잠긴 문'
(사진=연합뉴스)
"신천지라는 걸 밝히질 않으니까, 애꿎은 피해자가 생기는 거예요." (신천지 시설 건물 관리소장)지난 28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강남대 앞에 위치한 ○○연구원. 겉으로는 여느 심리상담소와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문은 굳게 닫힌 채였다.
이곳은 전날 경기도 120콜센터로 신천지 시설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경기도청 소속 김도형 종무팀장이 직접 발품을 팔았다.
김 팀장을 만난 건물관리소장은 '올 게 왔다' 듯 알고 있는 사실들을 쏟아냈다.
소장은 "생긴 지 얼마 안 돼 사람들이 (신천지 시설인지) 잘 모른다"며 "(앞 건물에 있는) 신천지 교회에서 봤던 사람이 연구원을 임대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니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소장은 대구 신천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던 지난 주말 임대인의 요청으로 연구원장과 한 통화내용도 전했다.
그는 "신천지 시설로 소문나 사람들의 항의가 있다고 했더니, '여긴 신천지만 오는 곳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상담하러 온다'며 확 짜증을 냈었다"며 "그러고는 월요일(24일)부터 아예 문을 닫고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남대 주변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연구원 같은) 크고 작은 공간들이 산재해 있다"며 "그게 소문나면서 사람들이 불안해서 강남대 앞은 가지 말라고 하고 있다. 다 굶어 죽게 생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종적으로 연구원장에 확인하는 작업이 남았지만, 김 팀장은 해당 연구원을 신천지 시설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판단했다.
김 팀장은 "신천지 시설로 보고서를 올릴 것"이라며 "그러면 방역담당 부서가 건물을 소독하고 해당 연구원을 폐쇄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기도는 이날 전날 제보를 받은 21곳 가운데 2곳을 신천지 시설로, 10곳은 관련이 없는 시설로 확정했다. 나머지 9곳은 당장 판단을 내릴 수 없어 확인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체크할 방침이다.
◇ 신분 숨기는 신천지 때문에 애꿎은 주민들만 피해 속출
경기도는 지난 24일 신천시 시설에 대한 폐쇄 긴급행정명령이 내려진 이후 도내 신천지 시설에 대한 폐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윤철원기자)
제보 중에는 잘못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신천지 시설로 확정된 곳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애꿎은 피해가 발생했다.
이날 찾은 용인시 기흥구의 한 공방도 이런 경우에 해당했다.
사연은 이랬다. 공방은 커피와 같은 음료를 팔면서 공간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런데 뜨개질이나 제빵, 공예 등의 취미 모임뿐만 아니라 신천지 모임까지 끼어들어갔던 것.
이같은 사실이 동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가면서 공방 주인까지 신천지로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공방은 신천지의 '아지트'로 소문이 났고, 공방 주인은 어쩔 수 없이 지난 27일부터 휴업할 수밖에 없게 됐다.
공방 주인은 김 팀장과의 통화에서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누가 성경공부를 하는지, 신천지인지 공간만 빌려주는 건데 알 수가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이같은 피해가 공방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건물 전체에 신천지 신도들이 드나들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건물내 업소들이 말 그대로 초토화됐다.
건물내 한 업소 주인은 "전멸이다. 손님이 오지 않는다. 동네가 좁아서 (커뮤니티 사이트에) 건물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서 우리도 신천지 아니냐고 그런다"며 "신천지는 처음 들어보는데, 그렇다고 문을 닫고 있으면 (신천지임을) 인정하는 거 같아서 닫지도 못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 경기도 "혼란 줄이기 위해 최대한 빨리 확인"이처럼 신천지 시설로 인한 주민 피해가 속출하면서 확인 과정에서도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이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용인시 기흥구의 한 카페였다. 신천지는 대개의 경우 폐쇄된 공간에서 모이기 때문에 카페를 신천지 시설로 의심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김 팀장은 우선 주변 탐문부터 시작했다. 먼저 인근 편의점과 공인중개소를 들러 "이 근처에 혹시 종교 시설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처음부터 신천지 시설이 있는지 물어서는 안 된다"며 "혹시 아닐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잘못 소문이라도 나면 지역에 혼란이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다행인지 편의점 점주와 공인중개사는 그런 시설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김 팀장은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카페 주인을 만나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확인 작업을 끝냈다.
김 팀장은 "한 번은 신천지 시설인지 확정이 안 돼 우선 폐쇄한 뒤 추후에 아닌 걸로 확인이 되면서 폐쇄를 풀었던 적이 있는데, 층별로 다니면서 사장님들한테 사과를 한 적이 있다"며 "그 분들도 마음고생이 크셨을 텐데 '빨리 확인해줘서 고맙다'고 우시는 모습을 봤다. 최대한 빨리 확인 작업을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