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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의 실책으로 재판 결과가 바뀐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국가배상을 청구하며 해당 판사를 법정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특별한 사유 없이 기각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진행 중인 사법농단 재판에는 전·현직 판사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나오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상황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8-2부(이순형 부장판사)는 지난달 27일 열린 재판에서 신안군 염전노예 피해자 박모씨 측이 신청한 현직 판사 3명에 대한 증인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보다 증거가 더 확보됐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해당 재판은 2018년 5월 소 제기 이후 1년 만인 지난해 5월에서야 첫 재판이 열렸고, 이날이 두 번째 재판이었다. 올 2월 법관 정기인사로 담당 재판부도 바뀌어 사실상 첫 재판이었던 셈이지만 곧바로 증인신청을 기각한 것이다.
박씨 측이 증인으로 신청한 판사 3명은 과거 박씨를 고용한 염전 주인 A씨를 처벌하는 형사재판을 담당했던 재판부(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1부) 구성원들이다.
해당 재판에서 A씨는 박씨를 13년간 무임금으로 착취하는 등 영리유인·준사기·감금·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기소됐지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A씨 측이 지적장애가 있는 박씨에게 받아간 처벌불원서가 인정되면서 핵심 혐의였던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서는 공소기각이 선고됐다.
해당 재판부는 다른 염전노예 가해자에 대한 형사재판을 13건이나 진행했지만, 지적장애인인 피해자가 쓴 처벌불원서는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지능이나 지적 수준, 사회적응력 등에 비춰볼 때 처벌불원 의사표시의 의미와 효과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처벌불원서를 받아들인 경우에는 피해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워 진정성을 검토하는 등 엄격하게 심리했지만 박씨에 대해서는 그러한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
이러한 내용이 이번 국가배상 소송 2심 과정에서 추가 증거물로 제출됐지만 피고(대한민국) 측은 여전히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씨 측 변호사는 "왜 박씨의 처벌불원서에만 진정성을 인정한 것인지 상대방은 아무런 답변이 없는데 재판부는 석명(사실을 설명해 내용을 밝힘)권을 행사하지도 않고 증인으로도 부르지 않은 채 재판을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5월 첫 재판에서는 당시 재판부(황기선 부장판사)가 '재판부의 합의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법원조직법 제65조를 언급하며 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발언하기도 했다. 판사들을 증인으로 부르더라도 당시 재판부의 결정 과정을 물을 수 없으니 증인채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작된 '사법농단' 피고인 14명의 재판에는 수십명의 현직 판사가 줄줄이 증언대에 불려나오고 있다. 이들의 증인신문 과정에는 재판의 합의 과정과 관련한 질문도 종종 등장하지만 증인이나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증언거부를 할 수 있다. 따라서 '합의 비공개' 조항을 근거로 판사를 증인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재판과 형평에도 맞지 않는 셈이다.
이는 다른 '염전노예' 국가배상 사건에서 피해상황을 방치했던 경찰이나 근로감독관들이 법정증인으로 나오거나 서면으로라도 답변을 제출했던 것과도 비교된다.
박씨 측 변호사는 "법관이 아니라 다른 공무원이 행정처리를 이런 식으로 했다면 당연히 그 이유를 물어보자고 했을 것"이라며 "항소심은 사실심의 마지막인데 다른 국가배상 소송과 비교해도 심리가 지나치게 무성의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씨 측은 해당 재판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현재 재판부에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기피신청을 냈다. 증인신청을 기각하며 재판부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상고심에서 다투라"며 사실상 변론을 종결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했기 때문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이미 재판부가 '원고 패소'를 염두한 것처럼 생각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국가배상 소송의 1심에서도 첫 재판이 열린 당일 재판부가 변론절차를 종결하고 곧바로 선고를 한 바 있다.
기피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서울중앙지법의 다른 민사 합의부에서 박씨 사건을 심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