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된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한 주민센터를 찾은 한 시민이 긴급재난지원금 안내를 받는 모습.(사진=박종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신청 및 지급이 11일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침체된 가계 및 시장 경제 활성화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전국민 대상 지급인만큼 긴급재난지원금의 사용 용도는 각양각색일 것으로 예상된다. 상당수 시민과 전문가 사이에선 이번 지원금이 소비 활력을 되살리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다만 '자발적 기부'를 두고 긍정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관제 기부' 논란부터 정부가 목표로 삼은 소비 유도와 다소 배치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제도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취약계층 집중지원, 기부 다변화 등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닻 올린 긴급재난지원금 '소비 활성화' 효과 있을까긴급재난지원금은 이날부터 일반 국민들의 신청을 받고 지급에 착수한다. 지난 4일에는 생계급여 수급가구 등 시급한 지원이 필요한 가구에 한해 현금 지급을 한 바 있다.
지원금 액수는 1인 가구 40만원, 2인 가구 60만원, 3인 가구 80만원, 4인 이상 가구 100만원이다. 전국민 대상 지급인만큼 사용처는 다양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의도하는 소비 활성화 역할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시민들은 동네 마트에서 생필품을 구입하는 등 지원금을 생활비로 요긴하게 쓸 수 있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항공사에 재직 중인 전모(32)씨는 "백화점이나 대기업 유통업체는 안되는 것으로 아는데, 알아보고 (동네) 식료품점에서 쓰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코로나가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가 되는 것 같은데 이 상황에서 돈을 푸는 것 자체는 소비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취업준비생인 윤모(28)씨는 "3인 가구라 80만원을 받을 것 같다. 생활비로 쓸 것"이라며 "유례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주는데 안 주는 것보다 확실히 소비 활성화에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달 내놓은 '2020년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하위 70%' 가구에 지원금 예산 7조6천억원이 집행될 경우 경제성장률이 0.097~0.114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예상됐다. 지원금이 더 확대된만큼 견인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반짝' 기대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또 코로나19로 직접 타격을 입은 취약계층이나 소상공인 등을 한층 더 고려하는 제도 정비가 필수라는 목소리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소비 활성화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저소득,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금액이 의미있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실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에게 전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짝 효과는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게 일회성으로 끝나기 때문에 다시 경기를 일으키고 선순환하는 부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취약계층의 경우 전기료부터 공과금 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데 지역화폐로는 이를 낼 수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자발적 기부 '관제' 논란도…소비 활성화와 배치?당정 줄다리기 끝에 전국민 지급이 결정됐지만 전제조건으로 달아놓은 '자발적 기부'에 대한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당장 지원금이 필요 없는 고소득층의 기부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지만, 자칫 '관제 기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제 기부 논란은 공직사회, 정치권, 재계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60만원의 지원금을 수령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액 기부했다. 경제 수장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당연히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모범을 보이겠다는 의도지만, '윗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공직사회에서는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기부 동참 의사를 밝히면서 재계에도 민감한 기류가 흐른다. 농협의 경우 기부에 참여한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가, 당사자들의 개별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는 '해프닝'을 겪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기부하는 것 자체를 '나빠요' 그럴 수는 없는 것이고 그 자체로 좋은 일이지만 우리나라 분위기에서 고위공직자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며 "회사에선 정말 (강제 기부를) 하지 말아야 될 일이지만 연쇄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예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부가 정부의 애초 의도인 소비 활성화와 다소 배치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기부금은 정부의 고용보험기금으로 편입된다. 기부의 경우 세액공제 혜택(16.5%)도 있지만 직접적인 소비 활력으로 연결되는 것이 불분명하다는 의견이다.
김태기 교수는 "제도를 전국민 대상으로 하다보니까 웃지 못할 상황이 돼버린 것"이라며 "재난에 피해를 입은 계층에게 직접 지원하는 것이 정상인데, (기부에) 너무나 많은 시간과 재원을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재난지원금은 앞서 정부가 소득 하위 70% 기준 지급으로 설계했으나 여야는 4·15 총선 과정에서 '전국민 지급'을 공약, 총선 이후 정부와 여당이 충돌을 빚었다. 다만 정부는 기부를 통해 확대된 고용보험기금이 향후 2차, 3차 코로나19 충격을 완화하며 실업급여나 고용유지지원금 등으로 일자리 창출을 이끌어내는 식의 경제 선순환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기부 의사를 밝히는 시민 중에는 기부금 활용처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IT 벤처회사에 재직 중인 김모(31)씨는 "기부에 대해서 사설 단체를 믿지 못하는 시민들에게는 아예 정부 방식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다만 고용보험기금으로 국한하는 것이 기부에 장벽을 두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많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원금을 받은 뒤 사회복지단체에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일부 구호단체들 역시 재난지원금 기부 캠페인에 나서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성태윤 교수는 "각자 본인의 뜻에 맞는 자발적 기부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맞다"며 "정부 입장에선 기부 효과를 높이기 위해 취약계층에 얼마나 의미있게 돌아가는지 면밀히 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