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활시설 나눔의집 직원들로부터 시설이 외부에 홍보된 바와 다르게 피해자들을 위해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21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수요집회를 없애야 한다. 참가한 학생들이 낸 성금은 어디 쓰는지도 모른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파장은 컸다. 평소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힘을 실어주던 이 할머니의 일침은 곧바로 정의연 부실 회계, 안성 쉼터 의혹 전반으로 확대됐고 국민들의 이목은 윤미향 당선인(전 정의연 이사장)에게 쏠렸다.
윤 당선인은 19일 저녁 이 할머니를 찾아가 무릎까지 꿇으며 사과했지만 용서를 받지 못했고, 검찰은 20·21일 이틀간 정의연을 압수수색했다. 정의연은 검찰이 압수수색을 시작한 20일 제1440차 정기 수요집회 현장에서 외부 기관에 공식 회계 감사를 요청해뒀다며 피해자 운동의 의의까지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정의연이 모든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변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윤 당선인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30년간 함께 해온 위안부 인권운동의 진정성은 인정하지만, 정의연과 일부 다른 목소리를 냈던 피해자 할머니까지 포용했냐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같은 지적이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부 사례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6년 8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공원 통감관저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제막식에 참석한 김복동 할머니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지의 눈 조형물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기억의 터'에 없는 위안부 피해자지난 2016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연의 전신)가 조성한 '기억의 터(247명 위안부 피해자 명단)' 조형물에 故심미자 할머니와 故박복순 할머니가 빠져 있다는 사실이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두 할머니 모두 과거 정대협과 갈등을 빚었다는 공통점이 있어 의도적인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상황.
심 할머니·박 할머니와 정대협의 갈등은 지난 1995년 한 일본 재단법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이 기폭제가 됐다.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을 명목으로 지급되는 민간기금을 심 할머니 등 7명이 수령하자 정대협측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전제로 한 게 아니라며 "7명 할머니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비판 성명까지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후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기금 대신 4300만원씩 지원하기로 했지만, 당시 기금을 수령한 7명의 피해자는 받지 못했다.
이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고 심 할머니와 박 할머니는 생전 정대협을 향해 "당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는 내용을 담은 '세계평화무궁화회'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해엔 '위안부운동의 대모' 김문숙 할머니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대협은 원래 윤정옥 선배와 내가 만든 단체"라며, "(윤 당선인이 대표가 된 후)정대협은 돈벌이에만 열중하게 됐다. 오로지 돈, 돈, 돈이다"라며 비판했다.
일본측 '아시아여성기금'을 원했던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석복순 할머니도 증언집에서 "우리는 나이 먹고 자꾸 죽어간다. 아무 데서나 마저 주는 돈 받아서 쓰고 죽겠다. 다수가 이거야. 할머니들 요구가 무리도 아니고, 정대협에서 (국민기금을) 주지 말라고 일본에 소문을 퍼뜨려놨다"며 "몇천만 원이나 주면 주는 대로 할머니들 타 먹게 내버려두지. 할매들은 다 죽어가잖아. 그런데 모금을 받지 말라. 그것 받으면 더러운 돈이다. 화냥*이다. 이런 귀 거슬리는 소리만 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 윤정옥 당시 정대협 대표는 "그 기금을 받으면 공창(허가를 받고 매춘 행위를 하는 여성)이 된다"고 말했다.
정의연은 현재 보상을 원했던 일부 피해자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포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위안부 문제는 국제적 여성 인권 문제임과 동시에 피해자 개인의 '한(恨)'이자 '아픔'이기 때문이다.
정의연은 20일 입장문을 통해 "진행된 상황을 바라보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국내외 시민들, 활동가들, 피해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겸허히 듣고 가슴에 새겨 정의연 설립의 원칙과 정체성에 더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활시설 나눔의집 직원들로부터 시설이 외부에 홍보된 바와 다르게 피해자들을 위해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21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의 추모공원에 할머니들의 아픔을 표현한 조각상 뒤로 시민들의 글귀가 보이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문희상 의장 측 "위안부 피해자들 빠른 해결 원했지만…"지난해 12월 문희상 국회의장은 일제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문제 해법으로 준비한 이른바 '1+1+α(알파)' 법안의 위로금 지원 대상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제외한 바 있다.
당초 위자료·위로금 지급 대상에 위안부 피해자까지 포함하는 '포괄입법' 형태를 구상했지만, 정의연 등이 위자료 지급 대상에 위안부 피해자를 포함하는 것이 "사과하지 않는 일본 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크게 반발했기 때문.
이번 정의연 논란과 관련해 문희상 국회의장 측 관계자는 "(위안부 피해자들은) 위안부 문제가 빨리 해결되길 바랐다. 일본의 법적 배상문제와 사과 등도 정부와 시민단체가 알아서 해결해주길 기다렸다"며 "그런데 피해자와 피해자를 대변하는 단체의 입장은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고 서로의 목표의식도 달랐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그는 "'문희상안(1+1+α)'을 만들 때도 윤미향 당선인 등이 와서 당시 위안부 문제는 법안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문희상안으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위안부 문제 관련 단체는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라며 "(관련단체 의견과는 별개로) 피해자들은 위안부 문제를 빨리 해결해달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고 말했다.
정의연 측이 위안부 문제의 '완벽한 해결'에 너무 치중해 할머니들의 현실적 보상책까지 막았다는 설명이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21일 서울 마포구 위안부 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을 압수수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후 평화의 우리집 모습.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한편에선 피해자들이 배상금을 받는 것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는 것을 비판하는 의견도 나왔다.
윤미향 당선인을 고발한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실제 피해자들 입장에서 배상을 전면에 내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그러나 연로하신 피해자 할머니들이 피해자로서 실질적 배상을 원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돌아가시면 진정성 있는 사과나 배상 모두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측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당연히 받아야 한다. 다만 배상금도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라며, "배상금을 받는 것에 대해 일부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배상금은 남에게 끼친 손해를 현실적으로 물어주기 위한 것으로 피해자들이 일본측에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용수 할머니의 측근은 "할머니들이 돈이나 주면 먹고 떨어질 사람들인가. 돈을 안 받도록 정대협이 뒤에서 종용하고 있다는 논리를 펴는데 그런 프레임은 이해할 수 없다"며, "할머니의 개인청구권이 살아있지 않나. 할머니들은 개인청구권과 무관한 위로금은 안 받으려고 평생 투쟁해오신 분"이라고 강조했다.